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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극) 2009 2인극 페스티벌 - B팀 관람기 2009.10.19



엊그제 포스팅하기로 한 연극 관람 후기입니다. ㅎㅎ

서울 연극 문화센터에서 하는 상설 이벤트에 당첨!


이후의 첫 당첨입니다.





 창작 2인극 페스티벌은 A, B, C 3개 팀으로 이뤄져 있고 각 팀별 2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마다 1주일씩 연우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B팀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잊혀진 노래>
작 조병여 / 연출 김태훈 / 드라마투르그 최은옥 / 출연 배진성, 이하나
그녀와 지금의 그는 오래된 연인이다. 그 만큼의 시간이 그들 사이에 강처럼 흐르고,
강이 폭을 넓히듯이 그녀와 그의 사이도 점점 멀어진다.
이 시간의 강이 언제 범람해서 그녀와 그를 집어삼킬지 모를 일.
그런데도 그녀와 그는 아니더라도 살아간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일요일 없이 살 수는 없을 거 같아서.
그런데 그가 일요일마다 산에 가겠다고 한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칼슘의 맛>   
작 김  원 / 연출 문삼화 / 드라마투르그 남승연 / 출연 김대건, 백재호
먼-, 아주 먼 미래.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모든 육류와 야채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지구의 인간들은 식품과학개발이 만들어낸 조잡스런 인공식품을 먹으며 바퀴벌레처럼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인공식품을 개발하는 한 회사의 개발실.
새로운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한 청년이 찾아오게 되는데…



 연우 소극장은 찾기가 좀 어려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만 서울 연극 센터 안내데스크로 티켓을 수령하러 갔더니 혜화역 주변 극장 지도가 들어있는 볼펜이 기념품으로 있길래 냉큼 하나 집어 왔습니다. 볼펜 안의 지도를 보니까 조금 찾기가 쉽더라구요. (물론 다음 지도로 미리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가서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ㅎㅎ)

 연우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이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무대가 있고 한쪽 편에 객석이 있어서 배우들이 한쪽 방향을 보면서 연기를 하면 되는 다른 소극장과는 달리 요런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무대가 객석을 향해 2방향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연출이나 연기하기가 까다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은 배우의 정면 내지 반측면 얼굴을 계속 보게 되는데, 덕분에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관람할 기회도 꽤 있었습니다.

 소극장이 조그마한데다가 로비도 없어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더니 그냥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찬바람을 맞으며...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칼슘의 맛 공연이 끝나고 잊혀진 노래를 공연을 위해 무대를 전환하는 시간에도 다들 밖으로 쫓겨나서 극장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좀 웃겼습니다. -_-ㅋㅋㅋ




 '칼슘의 맛'은 SF 연극이었습니다. 26세기가 배경으로, 더 이상 자연적인 식품은 남아있지 않아서 심지어는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지경까지 되었고, 바퀴벌레마저 먹을 것이 없어 멸종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인공식품이 개발되어 다들 인공식품이나 먹는 형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공식품에는 "영양소"가 없기 때문에, 주인공인 박사는 진짜 영양소를 만들어 먹어보기 위해 또 다른 주인공 조수를 채용합니다.

 설정을 이야기 하는 방식은 재미있는 편입니다. 조수가 안경을 끼고 벽 - 실은 관객들이 앉아 있는 객석을 바라보며 - 에 적혀 있는 슬라이드를 읽는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설정이 지나치게 황당무계해서 공학도로서는 좀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영양소가 없는 음식을 먹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차치하고, 심지어 바퀴벌레조차 멸종했다는 설정 속에서 인공식품의 재료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더불어서 칼슘을 "복제"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원소를 무슨 수로 복제합니까? 이건 뭐 과학이 아니고 연금술 수준입니다. -_-;

 극 속에서 인공식품으로 대변되는 영양소가 없는 음식들을 먹고 살았던 인물들이 진짜, 참된 어떤 것 - 영양소 - 으로 선택한 정제 칼슘이라는 건 사실 어떤 의미로는 자연미가 전혀 없는 인공의 극치입니다. 참으로 모순되죠. 진정한 음식이라는 것은 그냥 진짜 콩, 진짜 멸치이지 거기서 뽑아낸 칼슘이 아니잖아요.

 연극은 진짜 영양소를 먹고 싶어지만 사실상 진짜 음식을 먹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과일이나 채소를 먹는 대신, 비타민 C 알약을 먹는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의 미래는 조수가 겪은 그 것일지도 모르지요.

 풍자극이니만큼 대사와 연기가 위트 넘치게 흘러가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히로뽕이라는 만병통치약을 과거에는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먹을 수 없었다.' 같은 대사는 아주 유쾌했습니다. 설정만 좀 고등학교 과학 수준으로 되어 있었어도 더 재미있게 관람했을 것 같습니다. 애인님은 SF를 무지 좋아하는 편이라 극의 설정에 매우 분개했습니다. ㅋㅋ




' 잊혀진 노래'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내용이 좀 그렇긴 했지만 -_-;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권태기에 들어선 어떤 커플로, 남주인공은 일요일마다 여주인공의 후배(추정) A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며,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친한 동생 B와 썸씽이 막 시작되려는 참입니다. -_-;;; 기본적으로 2인극이기 때문에 여배우가 여주인공과 A를, 남자 배우가 남주인공과 B를 모두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배우는 여주인공을 연기할 때와 A를 연기할 때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어서 캐릭터 2개를 모두 잘 살려주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남주인공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안경이라는 소품을 사용했는데, 주인공일 때와 B일 때, 서있는 자세 같은 소소한 자세가 딴판이라 정말 다른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다만 표준어를 사용하려 노력하시는 와중에 드문드문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더라구요. 차라리 확 사투리/표준어를 구분해서 사용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주인공은 한물 간 가수로 그려지고 있는데, 여주인공의 테마곡이 있었습니다.
 곡이 너무 좋아서 유튜브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개여울, 정미조

곡과 도입부 때문에 약간 오래된 불륜 드라마 같은 느낌도 살짝쿵...

 연극은 탱고로 변주된 이 곡으로 주인공 둘이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속옷 차림의 두 배우분이 등장해서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무엇을 암시하는 은유인지 알만했기 때문에 조금은...ㅎㅎ; 이게 웬 아침드라마인가 싶어서 실망도 약간 했지요.

 남주인공 정태는 "이제 일요일은 못 와"라고 말합니다. 일요일엔 회사 사람들과 등산을 간다고. 실은 여주인공과의 밋밋하고 익숙해져버린, 변할 가망이 없는 관계가 지겨워 일요일만은 다른 여자를 만나기로 결심한 것이지만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술에 취해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던 어떤 남자의 전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은 "넌 항상 그런식이야", 라며 말싸움을 시작하죠. 그리고 기차 소리의 연출. 싸움을 기차소리로 표현하다니 멋진데, 라고 생각했는데 곧 이어지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 "이 기차 소리 지겹지도 않냐. 이사 가라" 알고 보면 진짜 기차소리 였던 거죠. 이 연극의 이런 표현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태는 일요일에는 A를 찾아가고, A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여주인공 민주와 하겠다고 하죠. A와 하고 있는 연애가 사실 이미 민주와 모두 겪은 일이기에, A와의 관계도 결국 언젠가는 그렇게 익숙해지고 권태로워질 것이기에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기사 연애라는 게 힘들죠 그쵸... 두근거리는 감정도 언젠가는 다 가게 마련이고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엔 그 과정이 너무나 귀찮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는 다 식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살기도 한다죠? 지루함을 끊고 싶어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 봤자 언젠가는 똑같이 흘러가는.

 여주인공 민주는 늘상 한물 가버린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입니다. 정태의 친한 동생 B는 아직도 민주의 노래가 좋다고, 세상에 하나 남은 팬이라고 하죠. 실은 민주를 사랑하는 것이지만요. 민주에게 그냥 얼굴만 보여줘도 자신은 - 민주가 없는 시간을 - 견딜 수 있다고.

 두 남자는 민주에게 시간은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같은 말을 하죠. 그렇지만 민주는 이런 견뎌야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합니다. 정태와 자신의 잊혀진 노래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죠. 정태는 말합니다. '일요일 때문에 남은 일주일을 망칠 수는 없잖아!' 글쎄요. 일주일을 지키자고 일요일을 망칠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요.

 이들의 관계가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연애의 도돌이표인지, 아니면 마침표인지는 본 사람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적어도 민주는 마침표를 찍었노라 생각해요.
 
 2인극인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넷이나 되어 약간은 혼란스러운 감도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 몇 없는 소품들로 여러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감탄했구요. 극이 풍부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은유적인 대사들과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스토리에 100% 공감하기에는, 글쎄요... 이제 겨우 연애 4년차라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권태기가 되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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