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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스토리 이벤트 당첨, 원스 어폰 어 타임 4 2008.02.13

티스토리 블로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영화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2월 10일까지 써야 된다고 하는데, 설 연휴 전에는 시간이 애매하고,

설 연휴 끝난 직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하는 수 없이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오늘에야 보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보러 갔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애인님의 표현을 빌자면 '꼬집을 데가 많아 맘놓고 웃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1945년 8월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에 코미디 장르인데, 일단 배경이 미묘한만큼 쉽게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라니...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시작은 동방의 빛을 찾는다는 일본 총감이 마의태자 시신 안에서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찾아내 석굴암의 불상 머리에 갖다 놓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1차적인 불쾌함.

빛이 석굴암 불상의 머리로 들어와, 다이아에서 반사되어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 도입부를 설치한 것 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천황 폐하 만세", 그것도 수 차례.

줄거리를 보면, 동방의 빛에 집착하는 것은 일본 총감이고

그것이 일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슨 필요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일본 총감의 오타쿠 적인 집착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로 그다지 천황 폐하 만세와 같은 부분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죠.

덕분에 시작부터 좀 불쾌한 감이 있었습니다.





여자 주인공 이보영은 미네르빠의 가수인데, 밤에는 일본 고위층을 터는 유명한 도둑이라는 설정입니다.

꽤나 있어보이게, 해당화라는 이름에다가 안중근 의사 손도장-_-을 막 붙이고 다녀서 뭔가 있는 것 같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한일 혼혈이라며 이쪽도 저쪽도 내 나라가 아니라고 내뱉어버리는

쌍퉁머리없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초반의 설정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조선에서는 일본인이라고,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고 한다면 분명 정체성의 갈등이 매우 클 것 같은데,

쉽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아니었는데도 배우는 너무 쉽게 말해버리더군요.

하지만 후반에는 일관성 있게 도덕심도 애국심도 무게감도 잃고 단순 사기꾼 수준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_-

다이아몬드 팔아 한 몫 잡는 게 목표일 뿐인...-_-

(그럴 거면 그 손도장은 왜 뿌리고 다녀!)





남자 주인공1 박용우는 정체불명의 사기꾼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갖다가 일본 고위층에 팔아서 돈을 버는(것 같은) 설정으로

애국심이라고는 1g도 없을 것 같은 사기꾼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리저리 변장을 하는 장면을 꽤나 여러차례 보여주기 때문이죠.

게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어디서 본건 많아가지고-_-라고 밖에...

하지만 박용우씨, 몸은 좋더군요 -ㅠ-

그런데 이 남자 실은 독립군이었다는 겁니다. -.-

초반의 피도 눈물도 영혼도 애국심도 민족의식도 없이 문화재를 팔아 넘기는 모습은 어디가고

실은 독립군이었다니... 반전도 이만한 반전이 없죠.

애국심을 갖고 있는 도둑 같았던 여자는 실은 정체성이 모호한 단순 도둑에 불과하고,

문화재를 홀랑홀랑 잘도 팔아먹는 남자는 실은 애국심이 투철한 독립군이었다는(...)

전반적으로 영화는 이 정도 개념입니다.






영화에는 독립군도 나옵니다. 의형제라는 설정인 것 같은데, 미네르빠의 지배인(혹은 사장?)과 요리사입니다.

성실한 의도로 계획한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주로 개그의 포인트인데,

두 사람의 만담을 하는 부분까지 웃기려고 의도했던 것 같지만 만담 부분은 별로 웃기지 않았어요.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예측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꽤나 우스웠던 부분도 있었죠.

특히 두 사람이 독립군인 것을 들킬까봐 일장기 밑에 있는 태극기를 사수하려고 하는데,

우연찮게 일장기가 떨어져 버려서, 그 뒤에 있는 태극기도 떼어냅니다.

그런데 그 아래는 동방의 빛 행사장에서 동방의 빛을 훔쳐내려고 만들었던 행사장 조감도가 있어서

허겁지겁 그것도 떼어내죠. 그런데 그 밑에 또 있습니다... ㅋㅋ 많이도 있더군요.

위의 장면에서 정말 실컷 웃었습니다. 실은 그 영화에서 처음으로 웃겼던 장면인 것 같아요. -_-

관객들도 다들 어디서 웃어야 할지 좀 고민했던 것 같은데, 그 장면에서는 같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노선이 다르다느니 하고 싸우는 거 실은 풍자인 건가요? 그렇다면 살짝 무섭...(...)





전반적으로 불쾌한 것이,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과도하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배우들의 모습,

물론 나름 열연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장면을 굳이 영화에 넣었어야 했나 싶어서 불쾌했어요.

어차피 다 조선인이라면서, 굳이 그렇게 일본인이 되어야겠다고, 2등국민 3등국민 타령을 해가면서, 일본 이름을 불러가면서 그런 장면을 보여 줘야 했는지 의문이네요.

더불어, 민간인을 잡아다가 폭행하고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그런 깡패같은 짓은 다 하는 하세가와 경부의 캐릭터로 인해서

일본인은 실제로는 별 거 안 했고 그 밑에서 더 악랄하게 나쁜 짓 하던 건 실제로는 조선인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빴어요.

실제로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만, 비열하고 비정해 보이는 일본 총감이 이 엄청 죽어나가는 영화에서 (자기 손으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_-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기는 일본인이라고 외치는 야마다의 캐릭터는 최악 가운데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광신도 같은 느낌까지 주는 과잉 충성, 전체적으로 가벼운 영화에 너무 지나치게 세심한 캐릭터 설정 아닌가요? -_-

차라리 경찰 서장 정도의 태도만 취했어도 좋았을 것을, 너무나 신실한 그 모습이 정말 짜증났습니다.

전체적으로 짜증나는 점이 몇 군데 있었지만 이 야마다의 캐릭터는 감정 이입을 방해하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악이었던 부분, 저는 의식 못하고 넘어갔는데 애인님이 일러 주더군요.

주인공 박용우가 자신이 독립군 첩보대 요원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장백산 13호'라고 부르더군요.

장백산이라니요, 이 영화 친일파가 만들기라도 한 겁니까? -_-?

아니면 우리 나라에 제가 모르는 장백산이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산, 백두산을 중국이 부르는 그 이름을 설마 영화에 독립군 요원 이름이랍시고 떳떳이 써놓은 건 아니겠죠?

물론 전체적으로 개념이 부족한 영화인 건 사실이지만 이쯤 되면 정말 최악입니다.

풍자를 한다거나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만든다거나 하는 목적이 있어서 배경을 택한 게 아니라,

역사 의식이 전혀 없어서 배경을 정한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아니, 영화의 가벼움에 비해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복잡하게 그려진 캐릭터를 보면 진지하고 생각이 있는 영화인 것도 같은데,

아니면 은근 친일 의식을 심어주려는 음모를 가지고 만든 영화인가요?

각 캐릭터가 그 시대에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려고 꽤나 애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야마다 군은 좀 오바였습니다. -_-





괜찮은 캐릭터, 괜찮은 연기, 액션 등의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고

스토리 구성도 억지스럽지 않은 그럭저럭 재밌는 코미디 영화가 될 뻔도 했는데

몇몇 부족한 점이 눈에 띄네요. 아쉽습니다.

억지로 자아내는 감동이나 유치한 권선징악류의 스토리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 의식을 갖고 일관된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더라면 웃음 속에 더 진한 것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게다가 이거, 아무 생각없이 웃기기에는 너무 미묘한 소재 아닌가요?!

아직 친일 잔재 청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사과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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