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한시인데 남편은 많이 피곤했는지 벌써 잠들었다. 원래도 아침형 인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하네 응? 덕분에 긴긴 일기 시작.




#2.

 지난번에 이 사업 관련해서 코엑스에서 전시도 했었는데 거긴 솔직히 평이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비슷하겠거니 싶었는데 일본에 와서 보니 원래 이렇게 전시회 자체가 흥하는 나라인건지, 아니면 일본에서의 클라우드 시장이 거대한 건지 정말 규모가 엄청났다. 


 솔직히 클라우드라는 게 어떤 신개념이라기보다 컴퓨팅의 일반 개념들을 더욱 사용자 모르게 더 빠르게, 더 크게 만드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데(그리고 그게 컴퓨팅이라는 것의 이데올로기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추상적 개념하에서 전시를 하려니 정말 뜬 클라우드 잡기인데...

 일본 업체들은 일본 특유의 퀄리티로 정말 잘 꾸며놓았다. 애초에 이들은 이런 것에 경험이 많구나 싶었다. 만약에 다음에 우리가 좀 더 잘 하고 싶다면, 특히 한국에서 유사한 전시를 한다면, 처음 2~3년은 일본 전시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나한테 전권이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말이다. 일본에서라면 유사한 퀄리티이겠지만, 한국에서 일본 전시 업체와 진행하면 아마 믿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퀄리티가 나올 것이고 확 눈길을 끌 수 있을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일본인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한국에서도 점원이 붙으면 다음에 올게요 라고 말하고 나가는 고객이 있는 편이지만 대체로는 점원이 관심가져주지 않으면 적당히 스쳐지나가게 마련이라 호객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한국 업체라 그런지는 몰라도 눈을 피하는 사람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다. 50%는 그냥 시선을 피하고, 40%는 인삿말을 건네면 같이 인사를 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한다. 그냥 받아가는 사람의 수는 정말 적다. 그런데 일본 업체들은 정작 홍보도우미들을 엄청 고용했고 사은품도 엄청 뿌려대고... 


 내 느낌에는 코엑스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는데, 클라우드 섹션은 사람이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보안쪽 이런데는 바글바글 하더라는데 가보질 못해서.... 이런 걸 보면 일본 시장 규모가 확실히 크긴 큰 것 같다. 더군다나 일본은 불황이라는데 이 정도라니...

 

 


#3.

 남편이 일본어로 일상 회화 정도는 되는 수준이라서 (혹은 그이상인지도..) 그런지 혹은 그새 나의 경험치도 많이 늘어난 것인지 생각 외로 해외 여행에 대한 부담감은 별로 없다. 다만 간단한 일본어를 배워서 써먹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유창하게 일본어를 말하면 너무나 당황스럽다. ㅜㅜ 곤니찌와 하며 브로슈어를 줬더니 뭔가 와다다다다 쏟아지는 일본말 흑흑흑.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으나 곧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I can't speak Japanese, Wait a moment라고 하면 된닼ㅋㅋㅋㅋ 그리고 통역을 불러온다 끗. 남편이 불쌍한 나를 위해 일본어를 몇마디 가르쳐주었는데, 잠시만요, 통역을 불러오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는데 까먹었다 젠장. 내일 다시 물어봐야지. 아무튼 어설픈 시도보다는 깔끔한 통역이 낫지. 어차피 뭐 첫날이라 그렇고 노하우가 쌓이면 더 잘 대응하겠지....? 여기 우릴 보내신 전무님의 뜻이 무언인지 다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험치는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허허허. 그런데 왜 그 몇 안되는 손님(?)들은 일어가 좀 되는 남편이 응대 가능할 땐 오지 않는거냐.......


 일본 호텔은 무지 맘에 든다. 특히 일회용품의 퀄리티가... 집에서 (싼맛에) 솜크기 제멋대로에 툭툭 부러지는 중국산 면봉 쓰다가 아름답게 가공된(?) 일제 면봉을 보니 참 만감이 교차한다. 적어도 국산 면봉은 일제만큼은 아니라도 그래도 솜 크기도 일정하고 부러뜨릴 의도가 아니면 부러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도 중국산 사서 쓰고 있으니 국산 면봉 업체에겐 미안하게 되었지만... 싼 게 다 좋은게 아니다. 품질의 하향 평준화를 유발하니 말이다. ㅜㅜ

 호텔 비치품 중 유일하게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치약이다. 칫솔을 주지 않던 한국 호텔의 서비스에 당황한 적이 있어서 칫솔은 준비해왔는데 치약은 준비를 안해왔다. 그런데 막상 여기는 칫솔도 주고 치약도 주는데 치약도 손톱만한 일회용이 있는거다... 일회용이라 그런지 아님 내가 페리오 중독인지 닦아도 개운치 못하고 뭔가 좀 슬프다. 이가 좀 안 좋은 느낌인 건 아직 크라운 씌운지 이틀밖에 안되서 그런거지 응..? 처음엔 좀 아플 수도 있댔으니까 응..? 

 전체적으로 크기가 아담하고 반 좌식인데 이런 것들도 또 다 마음에 든다. 몇 안되는 호텔 경험 중에 이탈리아의 힐튼 로마를 제외하고 가장 마음에 든 호텔 되겠다. 힐튼 로마는 매트리스가 정말로 진실로 완벽하게 우월했다. 난 거기 처음 누워보고 수백년간 침대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의 침대는 이정도 퀄리티구나라고 생각했다. 누우면 바로 잠들고 6시간만 자도 일어나면 최고의 컨디션. 물론 그리스 가서 생각을 다시 하긴 했지만.... 아직도 문의하고 싶다 그 매트리스 브랜드. 수입 가능하다면 수입하고 싶다.  

  한국 호텔은 물을 주던데 물은 안 줘서... 일단은 수돗물 끓여서 마시고 있다. 어흑 방사능.... ㅜ.ㅜ 게다가 음식점에서도 물이 기본이 아니다. 허허. 사실 오늘 아침엔 물을 못 찾아서 음료수 마셨다. ㅜㅜ 심지어 술이 서빙돼도 물은 따로 달라고 하지지 않으면 안 주더라. 물 부족 국가라면서 세계에서 물인심은 가장 후한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일본 음식이 은근 달고 짜다. 씁쓸한 일본 차랑 마시면 일본 차가 맛이 중화되면서 보리차 수준이 되고 밥도 적당한 간(?)이 되긴 하더라마는, 그래도 내입에는 심하게 달고 심하게 짰다. 단거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ㅜㅜ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에서 밥이 입에 안 맞을 줄이야 허허허. 그리스에서의 경험이 기억났다. 그리스식 요구르트를 시켜서 고것만 퍼먹었더니 점원이 기겁을 하며 고기를 찍어먹는 거라고 해서 시키는대로 해먹은 적이 있었더랬다. 그리스식 요구르트 진짜 시큼털털하고 이상한 맛이라 왜 먹나 싶었는데 고기랑 먹으니까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부드럽고 새콤하고 고소하고. 오늘 일식 먹고 그 생각이 났다. 이건 차랑 같이 먹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고보니 신혼여행때는 일기를 안썼네. 


 그리스 때는 남편에게 맥북이 없었고, 남편 폰으로만 데이터 로밍을 하고 그러는 바람에 거의 일기를 못썼다. 사진도 많이 찍었고 거의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일기로 써봤자 다시 안 볼 거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니 은근 아쉽다. 지금은 남편은 맥북보고 난 아이폰보고... 아 왠지 계속 손해보는 기분인데 ...음... 그렇지만 아무튼 한대만 로밍해도 두 대 인터넷 되는건 좋다. 아이패드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 더뉴아이패드... 여행오기 전에 사고 싶었는데 너무 정신 없어서 못 샀다 크 ㅋㅋㅋ 하지만 일본에서 너무 많은 돈을 쓰지만 않는다면 출장비가 나왔으니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하하! (혹시 누군가 보고 궁금해하실지 몰라서 : 지금 현재 남편이 쓰고 있는 맥북은 회사비품입니다.)




#4.

 회사 때문에 성남 사는데 회사에서 우리도 없는 사이에 이사를 해버렸다. 성남과 선릉 등에 흩어져 있는 회사를 본사의 다른 층으로 모으는 큰 계획이 있었는데, 우리 팀이 우선적으로 이사하기로 한 것. 귀국하고 하루 성남 출근하고 본사로 가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바뀌어서 (우리 책상을 옮겨야 해서) 그냥 우리 없는 새에 옮겨버렸다고 한다... 일단 집 계약기간 채울 때까지는 출퇴근에 애로사항이 꽃필 것 같다. 가깝다면 가깝지만 그래도 제일 가까운 모란 역까지가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고, 모란 역에서 회사까지가 1시간 이상인데 뭔가 굉장히 손해보는 기분이다. (현재는 자가용 출근인데 자가용으로 5~10분거리다... 겨울엔 엔진 가열되면 시동끄고 그랬음... ) 뭐 남편하고 손잡고 퇴근하면 그것도 나름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나름 근래에 생긴 좋은 점 하나는,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원래도 다음날에 대한 근거없는 희망에 가득차서 살아온 나날이긴 한데 요즈음에는 정말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는 남편이 어떤식으로든 늘 해결해주니까 호기심과 즐거움만 가득하다. 본사로 출근하면 분명히 좋은 점도 많이 있겠지. 살다보면 새 시장님 시정 6개월만에 살기 좋아진 서울 시민이 다시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아마 집값 잡는게 최대 목표이실 그 시장님은, 자기 시정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걸 보게 되실지도 몰라..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5.

 남들이 뭐라고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남편하고 결혼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다. 내가 평생 바래왔던 이상형보다 더 좋은 사람. 지금 이 현실은 20대 때 꿈꿔왔던 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분명히 내 10대때 꿈꿔왔던 그대로다. 완벽하게도. 어쩌면 20대 때 바랬던 건 조금 늦게, 40대에 이뤄질 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50대를 천천히 그려보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하고 결혼한 뒤로 난 다른 사람들에게 연애는 권할 지언정 결혼을 권유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권한 결혼이 내 결혼 같지 않을 것을 아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가끔은, 알려주고 싶은 거다. 연애를 해서 미리 경험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이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을 놓칠 수도 있다는 걸.


 내키는대로 대충 썼더니 엄청 길어졌다. 이런 일기를 쓰게 해주는 - 일찍 잠들어주시는 - 남편에게 고마워할 차례인가.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내 블로그의 긴 일기를 발견하고 좋아라하겠지. 그런 다음 부인은 항상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로구나 라며 또 나를 좋아하겠지. 그럼 난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며 즐겁고 좋아해주는 남편을 보며 행복해지겠지. 우리부부, 이렇게 행복하게 삽니다. :)


(몇 년 뒤 읽으며 비웃을지도 모르는 염장으로 완벽하게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