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고 왔습니다.

from 일상/일기 2007. 12. 19. 18:10

이번에도 할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주소지가 우리 집이라서 매번 투표할 때마다 귀찮은 걸음 하셔야 하죠.

그래도 매번 오십니다.

평소에는 특별히 누구 찍어야 하는지 잘 모르시는 편이고, 두루두루 주위 조언을 얻어서 투표를 하시는 편이었죠.

그런데 오늘은 투표소를 나오자마자 저한테 누구 찍었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비밀투표에요! 라고 강하게 외쳤더니 (그래도 사실 우리 집에 비밀 투표는 없습니다. -.-)

2번 찍었나? 라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2번을 왜 찍어요! 하고 강하게 나갔지요.

그랬더니 할머니 깜짝 놀라시면서 2번을 찍어야지, 왜 딴사람을 찍었냐고 막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벙쪄있는데 이거 웬걸 옆에서 갑자기 엄마도 거드시더군요. 왜 2번을 안 찍었냐고...-.-

오모나...

인터넷에 없는 2번 지지자 다 어디갔나 했더니 다 우리집에 계셨던 거군요...(...)

oTL

할머니의 요런 반응은 정말 처음이라서 궁금했습니다.

첨에는 소박하게 2번을 찍으면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뭐라뭐라 반박을 하다가 엄마와 할머니의 협공에다가 아빠의 은근한 지원사격까지 이어져서 GG...

그래서 그냥 물어나 보았지요. 왜 2번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냐고.

우리 할머니는 저도 안 본 대통령 후보 토론회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다 같이 돌아가면서 2번 후보를 공격하는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대요. 특히 1번 후보-.- 말이죠.

그런데도 2번 후보는 다른 후보를 공격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드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1번 후보가 너무 얄미워서 2번 후보가 큰 차이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나름의 선거 운동을 펼치신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막 타박을 하신 것을 보면;;;

거기다가, 2번 후보가 나름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는 점도 가산점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저희 할머니는 다른 수입원은 없으시고, 자녀들이 주는 용돈으로 반지하 전세에 사시는 서민이십니다. -.-...





뭐 이미 다 투표하고 나서 긴 얘기해봤자 소용은 없는 거죠.

저 혼자만 다른 후보를 찍었습니다만 나름 화기애애했습니다. -_-;;;;;;;;

뭐 몽골까지 운하가 생긴다 하더라도 설마 그거 5년만에 후딱 해치우지는 못하겠죠? (개인적인 견해로는 새만금 짝이 날 것 같습니다.)

대통령 혼자 나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봐요.

그래도 나름 우리 할머니가 TV도 보시고 자기 의사로 판단하신 것이 '네거티브한 후보는 싫다'라는 점에서 좀 진보한 것 같지 않나요?

(14대 선거 할 때만 해도 온 가족이 강력하게 -.- 영남당(...)을 찍는 것을 본 기억이 있네요.)

맨날 영남 호남 타령하는 선거 보다가 그래도 나름 영남 호남 타령하지 않고

다른 후보의 네거티브에도 같이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굳건한 굳히기 전략을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사실 2번 후보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후로 정치가 정말 진일보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야할길이 멀다고 해서 지금 나아간 한 발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이제는 정말 지역주의, 네거티브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좀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1번 후보, 자기 선거 운동 하고 있는 건지 2번 후보 선거운동 해주는 건지 알 수 없는 순간들 많았습니다.

그 정도밖에 전략 없는 그 정당도 한심하고...

후보의 도덕성은... 뭐...[먼산]

5년 뒤에는 잘해보아요. 솔직히 2번 후보때문에 다른 후보들의 공약이 다 묻힌 것 같은 감이 있어서 조금 아쉽네요.






오늘 그냥 괜히 뿌듯했습니다.

가족들이 다들 의미있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소신껏 그것도 열심히 투표하는 것을 봐서요.

저랑 지지하는 방향이 다르고 제가 보기에 부정적인 후보라고 해도 뭐 어떻습니까.

민주주의라는 게 항상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소중하니까요.





근데, 설마 총선도 한나라당이 싹쓸이 할까요?

안되는데.... 한강 지못미 <- 이런거 하고 싶지 않아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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