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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극) 왕궁식당의 최후 - 이 시대의 불편한 현실에 대한 불편한 고발. 2008.03.13

서울 연극 센터에서 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흐흐.. 여기서 소스가 공개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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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요리는 무엇입니까?

『연극』왕국식당의 최후

■ 일시 : 08.03.07(금) ~ 08.03.23(일)

■ 시간 : 평일 pm8:00 / 토요일 pm4:00, 8:00 / 일요일 pm4:00 / 월 쉼

■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관람등급 : 15세 이상

■ 주관/제작 : 극단 인혁

■ 주최 : 아르코예술극장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문의 : 극단인혁 / 02-923-7888

■ 작 : 김명화

■ 연출 : 이기도

■ 출연 : 홍원기-대요리사장 역, 김응수-주인각하 역, 이지하-무희 역, 박상종-오빠 역

 

♬ 2008년 이 시대의 우화 왕궁식당의 최후

블랙 코미디 ‘왕궁식당의 최후’는 건국 이후의 한국사회와 이 시대에 대한 우화다.

 

건 국 60주년을 은유한 창립 60주년을 맞은 자칭 최고의 식당으로 호칭되는 왕궁식당은 우리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세상의 권력 구도를 상징한다. 몰상식과 부도덕의 정점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 ‘왕궁식당의 최후’는 요리의 재료로 인간을 사용함으로써 지나 온 한국 사회와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공 연은 한 인간이 그 야만적 구조 속에서 그것이 가능하도록 부속처럼 살아가다가 최후에 자신 스스로를 물화物化 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시대의 구조적 모순과 함께 인간 본연의 진실과 그 한계와 갈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극중 인물, 무희의 오빠로 상징되는 인문학과 철학이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자 한다.





 가능한 스포일러는 자제했습니다. ^^

 블랙 코미디라고는 하지만 실은 그냥 블랙 플레이였습니다. 풍자극인 것은 사실이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류의 풍자는 아니더군요.

 왕궁 식당은 왕궁의 식당이 아니고, 식당의 이름입니다.(왕궁 식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설정 파악이 살짝 늦었어요. ㅠ.ㅠ 저는 '왕궁' 식당인 줄 알았는데... 주인 각하는 무려 휴대폰도 쓰심.) 전염병이 돌고, 홍수가 나서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 주인 각하가 내 주는 재료들마저도 거의 절반은 썩어 있는 형편입니다. 이 가운데 요리사 네 사람은 대 요리사장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요리사 숙주와 요리사 대파는 서로를 미워합니다. 숙주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자격증을 세 개나 소지한 해외파 요리사이고, 대파는 대 요리사장의 레시피를 충실히 구현하는 성실한 국내파(?)입니다. 숙주는 대파가 무식하다고 무시하며, 대파는 숙주가 입만 살았다고 비난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 요리사장과 주인 각하라는 권력 앞에 아부하는 점에서는 별다를 바 없는 인물들입니다.

 요리사 근대는 대 요리사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인물입니다. 실력있는 젊은 요리사로, 아부를 하지도 않지만 소신껏 바른 말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갈아엎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 개혁적인 인물이며, 정열의 불꽃이라는 이상적인 소스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지만 왕궁 식당의 이상한 비밀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해고당하고 .... 당하고 맙니다.

 요리사 ??는 (이름을 잘 못들었어요. ㅠ.ㅠ) 왕궁식당에 뭔가 수상한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히 환청을 들은 것으로 둘러대고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 - 무희 - 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무희의 실체에 대해 모르며, 그저 이상적인 존재로서 사모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여 자신의 환상이 깨진 순간 무희에게 잔혹해지는 존재로 돌변합니다.

 무희는 왕궁식당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입니다. 왕궁식당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왕궁식당을 떠나면 굶어죽을 것이 두려워 떠나지도 못합니다. 무희는 정신이 살짝 이상한 자신의 오빠를 왕궁식당에 몰래 숨겨두고 부양하고 있지만 결국 오빠에게 배신당합니다.

 무희의 오빠는 무엇이 계기인지 모르지만 약간 정신이 이상해진 인물입니다. 자신의 이름 조차 잊어버렸고 동생조차 알아보지 못하지만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이름, 철학적 문구들을 줄줄 읊는 인물이죠. 그렇지만 시종일관 먹을 것만 찾으며, 먹을 것 앞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을 부양해오던 동생조차 가차없이 외면합니다.

 요리사의 조수들은 요리사들로부터 아무런 요리에 대한 것을 배운 적이 없고, 오로지 배운 것이라고는 자기보다 아랫 사람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무시하는 것과, 한 자리 주겠다고 유인하는 법, 윗선으로 올라가기 위해 남을 밟고 공격하는 것만을 배운 자들입니다.

 대 요리사장은 이 왕궁 식당의 비밀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오로지 '살아남는 것'을 절대 선으로 믿고 있기에 함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음식의 썩은 내, 곰팡내를 가리지 않고 고객들에게 드러내는 '얼음장 같은 분별력'이라는 소스를 60년째 고집하는 소극적인 태도로 왕궁 식당의 모순에 대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전쟁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되뇌이며, 왕궁 식당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왕궁식당의 부조리를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어찌 보면, 책임 회피에 가까운 행위일 수도 있고 가장 강렬하게 책임을 지는 행위일 수도 있죠.

 주인 각하는 왕궁 식당의 모든 비밀과 모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도덕심이라고는 결여된 인물로, 왕궁식당이라는 제국에 언론과 방송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고객들을 배불리 먹여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선한 요리를 위해서는 신선한 재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식은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방식이 아닌, 끔찍한 방식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대충 어떤 인물들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파악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국이래로 계속 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연극의 희곡은 1997년에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최후에 대한 암시는 2008년인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지금 현재는 무희의 오빠가 음식에만 탐닉하고 있는 순간일 수도 있고, 요리사들이 암투로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다는 자신의 지위 상승에만 관심이 있는 요리사의 조수에 불과한 지도 모릅니다. 혹은, 부조리한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굶어 죽을 것이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자신을 착취하는 존재에 불과한 오빠를 부양하는 무희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더욱 끔찍하게도, 배고픔 앞에서는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떡 하나에 동생을 파는 오빠일지도 모르죠.

 이 연극은, 양심을 팔아넘긴채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맞이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만 살아남으면 될 것 같지만, 실은 그런 태도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저는 이 나라가, 개복했으나 암세포가 너무 퍼져버려 덮을 수밖에 없는 말기 암 환자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갈아 엎겠다는 젊음의 정열의 불꽃으로는 치료할 수가 없는 거죠. 간 전체가 암에 걸렸다고 간을 들어낼 수 있나요? 그래봐야 환자가 죽을 뿐이죠. 그러니 용감하고 실력있는 의사가 덤벼도, 결국 일부만을 깨작깨작 치료하고 도로 덮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랄까요. 상처는 곪고 곪아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설픈 대책을 내놔봤자,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기 십상이지, 치료는 할 수가 없는거죠.

 미래는 모순의 등에 올라, 무대를 떠나버렸습니다. 무너진 잔해에는 부도덕하나 실력이 있었던 요리사 대신, 이제는 부도덕한 잔재를 물려받은 데다가 실력조차 없는 요리사의 조수들이 남았을 뿐입니다.

 얼음장같은 분별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함부로 정열의 불꽃을 불살라보았자, 실제적인 대안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연극은 그래서 너무나도 불편합니다. 눈감고 모른척, 환청이겠거니 해도 되는 주위의 수상한 일들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불편합니다. 하지만 실은, 수상한 창고의 문을 열어헤쳤을 때 맞닥뜨리게 될 왕궁식당의 비밀이, 가장 끔찍하고 참혹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진정으로 불편한 것이겠죠. 게다가 창고의 문을 연다고 내가 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연극 자체는 배우들이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좀 많아서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을 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이해하고 나니 정말로 심각한 기분이 되더군요. 결말은 예상 가능하지만 또 예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특별히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그건 이 현실의 문제가 어떤 단순한 대안으로 해결될 만한 것이 아니니 이해해야겠죠.

 불편한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나 말로 표현하기 힘드셨던 분들은 이 연극의 힘을 빌어 보세요. 그것이 고전, 문학, 예술이 수행하는 직책이니까요. ^^

 이 연극 《왕궁식당의 최후》는 2008년 3월 7일부터 2008년 3월 2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합니다. 평일 8:00PM, 토요일 4:00PM, 8:00PM, 일요일 4:00PM에 상연하며, 월요일에는 상연이 없습니다. ^^; 티켓은 아르코 예술극장, 티켓링크, 인터파크에서 예매하실 수 있습니다.


내일 또 연극을 보러 갑니다. +ㅅ+

연극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당첨되었거든요.

그러므로 내일도 재미ㅇ벗은 감상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흐흐흐. 죄송하지만 죄송하지 않습니다. :)

이 블로그의 컨셉은 언제나 질보다는 양이거든요.

질책은 글이 안 올라올때만 받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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