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서핑을 하다가 문득 발레리나 사진을 발견하고 따라가보다보니 가까운 시일에 하는 발레 공연이 있더군요. 게다가 그 표는 무려 놀랍게도 단돈 5000원!.... 물론 B석이지만. 그래도 5천원이라면 영화보다 싸잖아..!

 그리하여 당장 예매에 들어갔습니다. 표가 R, A, B 각각 10장도 변변히 남지 않은 상태였기에 정말 후다다닥 결제를 했고 토요일 오후 3시라는 좋은 시간에 B석 두 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_+

 

B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국립발레단의 코펠리아는 5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상연합니다. 좌석에 앉아 무대를 찍어 봤습니다. 구석을 피하려면 A석은 되어야 했을 것 같네요. 티켓의 가격이 가격이라, 무대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토월극장이 워낙 작아서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습니다.


 줄거리

  코펠리아는 코펠리우스 박사가 만든 사람 크기의 인형입니다. 이 인형을 발견한 프란츠가 애인 스와닐다를 두고 코펠리아에게 반해서 사랑을 고백하려고 코펠리우스 박사의 집에 침입을 하게 되죠. 한편 스와닐다는 코펠리우스 박사가 떨어뜨린 집 열쇠를 주워 박사의 집에 들어가 보고 코펠리아가 인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코펠리우스 박사는 프란츠를 꾀어 술을 먹이고, 프란츠의 영혼(?)을 가지고 코펠리아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스와닐다의 기지로 코펠리우스 박사는 자신의 실험이 실패한 것을 알게 되고, 프란츠와 스와닐다는 행복하게 결혼을 합니다.


 3막으로 구성되어 1막은 프란츠와 친구들이 코펠리아를 발견하고 프란츠가 코펠리아에게 사랑을 느끼는 장면, 2막은 코펠리우스 박사의 집, 3막은 프란츠와 스와닐다의 결혼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막 모두를 쉬는 시간 없이 65분 동안 상연했으니 조금은 짧은 내용이었지요. (사실 길어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 내용..-.-)

 이 발레는 특이하게도 막과 막 사이에 발레리노가 나와서 내용을 해설해줍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해설이 없는 게 나았을 뻔 했어요. 프로그램북에 있는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해설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린이들이 관람하러 많이 왔더군요. 솔직히 발레가 어린애들에겐 좀 지루하니... 그나마 해설이라도 있는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예전에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셜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본 적이 있는데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유니버셜 발레단에 비해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이 발레에서도 그런것을 기대했죠.


 그런데 웬걸... 안무에 현대적인 동작이 정말 많이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 중의 몇 가지... 특히 -.- W 게임의 모 캐릭터가 추는 춤 중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저질스럽게 평가하는 동작이 있어서 좀.. 복잡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물론 W 게임의 춤들은 다 있는 춤을 가지고 모션캡쳐해서 만든 거니까 뭔가 유명한 원본 춤이 있겠지만...

 줄거리 자체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약간의 반전이 있는 점도 재미있었죠. 저렴한 가격도 마음에 들고... 다만 아쉬웠던게 저연령 관객이 많아서인지 후반으로 갈 수록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 감이 있더군요. 아쉽습니다. ㅠ.ㅠ 3막을 중간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모두 상연했는데, 그래도 상연시간이 65분이라고 하니 좀 짧은 편이네요.


코펠리아
  • 공연기간 : 2010.04.27 ~ 2010.05.05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 출연 : 정보 없음
  • 1997년 시작된 국립발레단의 스테디셀러 공연 ‘해설이 있는 발레’가 2010년 탄생 14주년을 맞이해 ‘전막 해설발레’로 업그레이드 돼 .. 더보기

덧. 그리고 관람일은 5월 1일이긴 하지만 나름 5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4월 29일이 기념일이라 그 날 뭔가 하고 싶었는데...  미스 사이공이 동네(?)에서 상연중이라 그걸 볼까도 했지만 가격이 부담시러워서 허허허.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려나 했는데 은근 얼마 안 걸리더군요. 3호선 접근성이 좋아져서 오히려 이전보다 가기는 편해진 느낌이군요.

덧2.
 

 그리고 받은 홍보용 팜플릿. 이것도 가보고 싶네요. 세 개의 짧은 발레를 하나씩 상연하는 것 같아요. 마침 딱 제 생일 즈음에 하기도 하고... 그리고 C석 5000원... 물론 오페라극장은 5층짜리라 C석은 맨눈으로는 안 보이겠지만...

덧3. 5월 5일까지 하는 예술의 전당 공연은 이미 매진이지만..... 국립발레단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코펠리아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월 26일~30일까지 상연합니다. 역시 B석은 만원 정도로, 저렴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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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호프는 기차역 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어느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여 이뤄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연극입니다. 이 연극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며 (Non-verbal), 가면을 쓴 배우들이(Mask) 나와 연기를 펼칩니다.  연극이란 대사와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핵심일 것 같은데, 표정은 마스크로 가리고 대사는 없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줄거리는 프로그램북에서 인용해보았습니다.
어느 작은 기차역의 분주한 아침이 오늘 역시 시작된다. 매표소와 잡화점이 문을 열고 역 직원들이 이곳저곳을 챙기는 동안, 청소부 아주머니 소라도 아침 역 단장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떤 할아버지 동수는 드디어 오늘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한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탓에 소라 앞에만 서면 굳어버리는 동수...
소매치기들과 외국인들, 여자친구를 찾아가는 청년 등 기차역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동수를 돕기 위한 동네 할아버지들의 작전들이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하나의 캐릭터의 우는 얼굴 웃는 얼굴 등 같은 사람의 표정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가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한 캐릭터 당 하나의 가면이 있었는데, 이 가면은 좌우 대칭으로 생긴 가면이 아니라 묘하게 좌우가 다르도록 만들어지고 굴곡이 심하게 진 가면이라 극장의 조명과 어우러져 묘하게도, 뚜렷한 하나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대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몸짓, 그리고 마스크의 생김새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더불어 캐릭터 당 하나의 얼굴밖에 없는데도, 좌우의 비대칭 때문에 배우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어느 위치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마치 여러가지 표정을 짓는 듯한 놀라운 효과를 주었습니다. 가면은 달랑 한 개 인데요!

 지난 번에 보고 왔던 2인극에서도,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소품과 억양, 목소리, 자세등의 변화를 주어 다른 사람임을 충분히 표현했지요. 그렇지만 무대 위에 어떤 '배우'가 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호프에서는 워낙에 많은 가면 - 즉 많은 캐릭터 - 가 등장할 뿐더러 실제로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가면, 그 캐릭터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과장된 몸짓인 것 같은데, 어색하지 않게 몸짓 만으로 캐릭터를 달리 연출하는 배우들의 능력이 기가 막히더군요. 솔직히 말해 어느 배우가 어느 역을 연기했는지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진짜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되어 무대 위에 엄청 많은 사람이 등장했던 것 처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배우의 숫자는 고작 4명! 마지막에 탈을 벗고 인사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놀랍더군요.

 묘사를 배우들의 몸짓과 가면에 100% 의존한다면 이 연극의 서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음악이 동반됩니다. 캐릭터 들의 감정, 상황에 맞는 음악이 바뀌어 나와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과 음악이, 연극이라기보단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 점도 꽤 즐거웠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와서 이 연극을 보는 것이 참 꿈을 복기하는 것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캐릭터가 스쳐 지나가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줄거리는 기억이 나고 음악을 통해 상황은 이해했지만 아무 대사를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꿈에서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깨고 나서 상황은 알지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한바탕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요번의 연극 감상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아주 즐거웠어요.



 소소하게 아쉬웠던 점들도 있었습니다.

 우선 연극을 보며 너무 외국 번안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창작집단 '거기가면'의 창작극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과, Non-verbal mask theatre 라는 설명이 참 어색했습니다. 그냥 무언 가면극이라고 하는 편이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가져올 것 같았거든요. 저에겐 약간 거부감도 주더군요.

 또 하나 관객과 같이 상호작용 하는 것은 좋았는데 약간 불쾌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뚫는 장비(?)로부터 관객석으로 물이 튀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튀지 않았고 그 물이 그냥 깨끗한 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물이 튀었으면 불쾌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사탕이 관객석으로 날아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건 참 좋았는데, 강아지 역을 하던 배우가 사탕을 물었다가 뱉으시더라구요. ㅠ.ㅠ;;; 물론 역시 저한테 날아온 건 아니지만 이런 보기가 좀 ...싫었습니다.

 극의 서사 구조가 좀 약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느낌이라 볼거리는 많은데, 이야기 구조는 하나밖에 없거든요.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지나가는데, 의미없이 지나가는 캐릭터들이 많아요. 많은 가면 속에서 소박하고 소심한 사랑 달랑 한 커플은 조금은 아쉬운 기분을 느끼게 하더라구요. 차라리 같은 구조 안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커플을 두 쌍 등장시켰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표소 처녀와 잡화점 총각은 초장에 티격태격하다가 별반 사건 없이 극 말미에서 깊은(?) 사이가 되는데, 동수 할아버지의 사연 말고 이들의 사연도 비슷한 비중으로 병렬로 이뤄진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복잡하게 느껴지려나요?)

 약간의 아쉬움은 제하고,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보통의 연극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인터넷에 작가 겸 연출가분의 인터뷰가 있길래 링크해봅니다. (글 말고 동영상을 보세요)
 기사 보러가기 >>>> [스테이지2010] 마스크연극 <반호프>

반호프
  • 공연기간 : 2009.10.23 ~ 2009.11.15
  • 공연장소 : 대학로 씨어터 디아더
  • 출연 : 최요한, 구기환
  • 넌버벌 마스크 연극 <반호프> 창작집단 거기가면이 넌버벌 마스크연극 <반호프>를 200..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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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포스팅하기로 한 연극 관람 후기입니다. ㅎㅎ

서울 연극 문화센터에서 하는 상설 이벤트에 당첨!


이후의 첫 당첨입니다.





 창작 2인극 페스티벌은 A, B, C 3개 팀으로 이뤄져 있고 각 팀별 2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마다 1주일씩 연우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B팀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잊혀진 노래>
작 조병여 / 연출 김태훈 / 드라마투르그 최은옥 / 출연 배진성, 이하나
그녀와 지금의 그는 오래된 연인이다. 그 만큼의 시간이 그들 사이에 강처럼 흐르고,
강이 폭을 넓히듯이 그녀와 그의 사이도 점점 멀어진다.
이 시간의 강이 언제 범람해서 그녀와 그를 집어삼킬지 모를 일.
그런데도 그녀와 그는 아니더라도 살아간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일요일 없이 살 수는 없을 거 같아서.
그런데 그가 일요일마다 산에 가겠다고 한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칼슘의 맛>   
작 김  원 / 연출 문삼화 / 드라마투르그 남승연 / 출연 김대건, 백재호
먼-, 아주 먼 미래.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모든 육류와 야채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지구의 인간들은 식품과학개발이 만들어낸 조잡스런 인공식품을 먹으며 바퀴벌레처럼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인공식품을 개발하는 한 회사의 개발실.
새로운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한 청년이 찾아오게 되는데…



 연우 소극장은 찾기가 좀 어려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만 서울 연극 센터 안내데스크로 티켓을 수령하러 갔더니 혜화역 주변 극장 지도가 들어있는 볼펜이 기념품으로 있길래 냉큼 하나 집어 왔습니다. 볼펜 안의 지도를 보니까 조금 찾기가 쉽더라구요. (물론 다음 지도로 미리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가서 헤매지는 않았습니다. ㅎㅎ)

 연우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이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무대가 있고 한쪽 편에 객석이 있어서 배우들이 한쪽 방향을 보면서 연기를 하면 되는 다른 소극장과는 달리 요런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무대가 객석을 향해 2방향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연출이나 연기하기가 까다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은 배우의 정면 내지 반측면 얼굴을 계속 보게 되는데, 덕분에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관람할 기회도 꽤 있었습니다.

 소극장이 조그마한데다가 로비도 없어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더니 그냥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찬바람을 맞으며...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칼슘의 맛 공연이 끝나고 잊혀진 노래를 공연을 위해 무대를 전환하는 시간에도 다들 밖으로 쫓겨나서 극장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좀 웃겼습니다. -_-ㅋㅋㅋ




 '칼슘의 맛'은 SF 연극이었습니다. 26세기가 배경으로, 더 이상 자연적인 식품은 남아있지 않아서 심지어는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지경까지 되었고, 바퀴벌레마저 먹을 것이 없어 멸종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인공식품이 개발되어 다들 인공식품이나 먹는 형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공식품에는 "영양소"가 없기 때문에, 주인공인 박사는 진짜 영양소를 만들어 먹어보기 위해 또 다른 주인공 조수를 채용합니다.

 설정을 이야기 하는 방식은 재미있는 편입니다. 조수가 안경을 끼고 벽 - 실은 관객들이 앉아 있는 객석을 바라보며 - 에 적혀 있는 슬라이드를 읽는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설정이 지나치게 황당무계해서 공학도로서는 좀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영양소가 없는 음식을 먹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차치하고, 심지어 바퀴벌레조차 멸종했다는 설정 속에서 인공식품의 재료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더불어서 칼슘을 "복제"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원소를 무슨 수로 복제합니까? 이건 뭐 과학이 아니고 연금술 수준입니다. -_-;

 극 속에서 인공식품으로 대변되는 영양소가 없는 음식들을 먹고 살았던 인물들이 진짜, 참된 어떤 것 - 영양소 - 으로 선택한 정제 칼슘이라는 건 사실 어떤 의미로는 자연미가 전혀 없는 인공의 극치입니다. 참으로 모순되죠. 진정한 음식이라는 것은 그냥 진짜 콩, 진짜 멸치이지 거기서 뽑아낸 칼슘이 아니잖아요.

 연극은 진짜 영양소를 먹고 싶어지만 사실상 진짜 음식을 먹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과일이나 채소를 먹는 대신, 비타민 C 알약을 먹는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의 미래는 조수가 겪은 그 것일지도 모르지요.

 풍자극이니만큼 대사와 연기가 위트 넘치게 흘러가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히로뽕이라는 만병통치약을 과거에는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먹을 수 없었다.' 같은 대사는 아주 유쾌했습니다. 설정만 좀 고등학교 과학 수준으로 되어 있었어도 더 재미있게 관람했을 것 같습니다. 애인님은 SF를 무지 좋아하는 편이라 극의 설정에 매우 분개했습니다. ㅋㅋ




' 잊혀진 노래'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내용이 좀 그렇긴 했지만 -_-;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권태기에 들어선 어떤 커플로, 남주인공은 일요일마다 여주인공의 후배(추정) A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며,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친한 동생 B와 썸씽이 막 시작되려는 참입니다. -_-;;; 기본적으로 2인극이기 때문에 여배우가 여주인공과 A를, 남자 배우가 남주인공과 B를 모두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배우는 여주인공을 연기할 때와 A를 연기할 때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어서 캐릭터 2개를 모두 잘 살려주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남주인공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안경이라는 소품을 사용했는데, 주인공일 때와 B일 때, 서있는 자세 같은 소소한 자세가 딴판이라 정말 다른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다만 표준어를 사용하려 노력하시는 와중에 드문드문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더라구요. 차라리 확 사투리/표준어를 구분해서 사용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주인공은 한물 간 가수로 그려지고 있는데, 여주인공의 테마곡이 있었습니다.
 곡이 너무 좋아서 유튜브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개여울, 정미조

곡과 도입부 때문에 약간 오래된 불륜 드라마 같은 느낌도 살짝쿵...

 연극은 탱고로 변주된 이 곡으로 주인공 둘이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속옷 차림의 두 배우분이 등장해서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무엇을 암시하는 은유인지 알만했기 때문에 조금은...ㅎㅎ; 이게 웬 아침드라마인가 싶어서 실망도 약간 했지요.

 남주인공 정태는 "이제 일요일은 못 와"라고 말합니다. 일요일엔 회사 사람들과 등산을 간다고. 실은 여주인공과의 밋밋하고 익숙해져버린, 변할 가망이 없는 관계가 지겨워 일요일만은 다른 여자를 만나기로 결심한 것이지만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술에 취해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던 어떤 남자의 전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은 "넌 항상 그런식이야", 라며 말싸움을 시작하죠. 그리고 기차 소리의 연출. 싸움을 기차소리로 표현하다니 멋진데, 라고 생각했는데 곧 이어지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 "이 기차 소리 지겹지도 않냐. 이사 가라" 알고 보면 진짜 기차소리 였던 거죠. 이 연극의 이런 표현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태는 일요일에는 A를 찾아가고, A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여주인공 민주와 하겠다고 하죠. A와 하고 있는 연애가 사실 이미 민주와 모두 겪은 일이기에, A와의 관계도 결국 언젠가는 그렇게 익숙해지고 권태로워질 것이기에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기사 연애라는 게 힘들죠 그쵸... 두근거리는 감정도 언젠가는 다 가게 마련이고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엔 그 과정이 너무나 귀찮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는 다 식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살기도 한다죠? 지루함을 끊고 싶어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 봤자 언젠가는 똑같이 흘러가는.

 여주인공 민주는 늘상 한물 가버린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입니다. 정태의 친한 동생 B는 아직도 민주의 노래가 좋다고, 세상에 하나 남은 팬이라고 하죠. 실은 민주를 사랑하는 것이지만요. 민주에게 그냥 얼굴만 보여줘도 자신은 - 민주가 없는 시간을 - 견딜 수 있다고.

 두 남자는 민주에게 시간은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같은 말을 하죠. 그렇지만 민주는 이런 견뎌야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합니다. 정태와 자신의 잊혀진 노래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죠. 정태는 말합니다. '일요일 때문에 남은 일주일을 망칠 수는 없잖아!' 글쎄요. 일주일을 지키자고 일요일을 망칠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요.

 이들의 관계가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연애의 도돌이표인지, 아니면 마침표인지는 본 사람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적어도 민주는 마침표를 찍었노라 생각해요.
 
 2인극인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넷이나 되어 약간은 혼란스러운 감도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 몇 없는 소품들로 여러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감탄했구요. 극이 풍부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은유적인 대사들과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스토리에 100% 공감하기에는, 글쎄요... 이제 겨우 연애 4년차라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권태기가 되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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