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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극) 반호프(Bahnhof) 2 2009.11.12


 반호프는 기차역 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어느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여 이뤄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연극입니다. 이 연극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며 (Non-verbal), 가면을 쓴 배우들이(Mask) 나와 연기를 펼칩니다.  연극이란 대사와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핵심일 것 같은데, 표정은 마스크로 가리고 대사는 없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줄거리는 프로그램북에서 인용해보았습니다.
어느 작은 기차역의 분주한 아침이 오늘 역시 시작된다. 매표소와 잡화점이 문을 열고 역 직원들이 이곳저곳을 챙기는 동안, 청소부 아주머니 소라도 아침 역 단장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떤 할아버지 동수는 드디어 오늘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한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탓에 소라 앞에만 서면 굳어버리는 동수...
소매치기들과 외국인들, 여자친구를 찾아가는 청년 등 기차역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동수를 돕기 위한 동네 할아버지들의 작전들이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하나의 캐릭터의 우는 얼굴 웃는 얼굴 등 같은 사람의 표정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가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한 캐릭터 당 하나의 가면이 있었는데, 이 가면은 좌우 대칭으로 생긴 가면이 아니라 묘하게 좌우가 다르도록 만들어지고 굴곡이 심하게 진 가면이라 극장의 조명과 어우러져 묘하게도, 뚜렷한 하나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대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몸짓, 그리고 마스크의 생김새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더불어 캐릭터 당 하나의 얼굴밖에 없는데도, 좌우의 비대칭 때문에 배우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어느 위치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마치 여러가지 표정을 짓는 듯한 놀라운 효과를 주었습니다. 가면은 달랑 한 개 인데요!

 지난 번에 보고 왔던 2인극에서도,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소품과 억양, 목소리, 자세등의 변화를 주어 다른 사람임을 충분히 표현했지요. 그렇지만 무대 위에 어떤 '배우'가 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호프에서는 워낙에 많은 가면 - 즉 많은 캐릭터 - 가 등장할 뿐더러 실제로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가면, 그 캐릭터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과장된 몸짓인 것 같은데, 어색하지 않게 몸짓 만으로 캐릭터를 달리 연출하는 배우들의 능력이 기가 막히더군요. 솔직히 말해 어느 배우가 어느 역을 연기했는지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진짜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되어 무대 위에 엄청 많은 사람이 등장했던 것 처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배우의 숫자는 고작 4명! 마지막에 탈을 벗고 인사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놀랍더군요.

 묘사를 배우들의 몸짓과 가면에 100% 의존한다면 이 연극의 서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음악이 동반됩니다. 캐릭터 들의 감정, 상황에 맞는 음악이 바뀌어 나와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과 음악이, 연극이라기보단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 점도 꽤 즐거웠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와서 이 연극을 보는 것이 참 꿈을 복기하는 것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캐릭터가 스쳐 지나가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줄거리는 기억이 나고 음악을 통해 상황은 이해했지만 아무 대사를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꿈에서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깨고 나서 상황은 알지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한바탕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요번의 연극 감상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아주 즐거웠어요.



 소소하게 아쉬웠던 점들도 있었습니다.

 우선 연극을 보며 너무 외국 번안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창작집단 '거기가면'의 창작극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과, Non-verbal mask theatre 라는 설명이 참 어색했습니다. 그냥 무언 가면극이라고 하는 편이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가져올 것 같았거든요. 저에겐 약간 거부감도 주더군요.

 또 하나 관객과 같이 상호작용 하는 것은 좋았는데 약간 불쾌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뚫는 장비(?)로부터 관객석으로 물이 튀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튀지 않았고 그 물이 그냥 깨끗한 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물이 튀었으면 불쾌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사탕이 관객석으로 날아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건 참 좋았는데, 강아지 역을 하던 배우가 사탕을 물었다가 뱉으시더라구요. ㅠ.ㅠ;;; 물론 역시 저한테 날아온 건 아니지만 이런 보기가 좀 ...싫었습니다.

 극의 서사 구조가 좀 약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느낌이라 볼거리는 많은데, 이야기 구조는 하나밖에 없거든요.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지나가는데, 의미없이 지나가는 캐릭터들이 많아요. 많은 가면 속에서 소박하고 소심한 사랑 달랑 한 커플은 조금은 아쉬운 기분을 느끼게 하더라구요. 차라리 같은 구조 안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커플을 두 쌍 등장시켰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표소 처녀와 잡화점 총각은 초장에 티격태격하다가 별반 사건 없이 극 말미에서 깊은(?) 사이가 되는데, 동수 할아버지의 사연 말고 이들의 사연도 비슷한 비중으로 병렬로 이뤄진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복잡하게 느껴지려나요?)

 약간의 아쉬움은 제하고,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보통의 연극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인터넷에 작가 겸 연출가분의 인터뷰가 있길래 링크해봅니다. (글 말고 동영상을 보세요)
 기사 보러가기 >>>> [스테이지2010] 마스크연극 <반호프>

반호프
  • 공연기간 : 2009.10.23 ~ 2009.11.15
  • 공연장소 : 대학로 씨어터 디아더
  • 출연 : 최요한, 구기환
  • 넌버벌 마스크 연극 <반호프> 창작집단 거기가면이 넌버벌 마스크연극 <반호프>를 200..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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