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차 - 즉 수술 당일 - 은 도저히 컴퓨터를 할만한 상태가 아니길래 그냥 아이폰의 음성 녹음을 이용해 수술 감상을 간단히 녹음해 두었다. 언젠가 옮기기는 할텐데, 해야할 포스팅이 충분히 밀려있기 때문에, 무려 녹음까지 되어 있는 내용 같은 건 언제쯤 포스팅이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루만에 검사부터 수술까지 할 수 있다길래 나는 사후 관리도 꽤 간단한 줄 알았는데 바로 다음 날 또 병원에 내원해야 했다.
집에서 30분도 넘게 걸리는 병원까지 갔는데 대단히 허무했다. 간단한 시력검사 - 그 마저도 양안을 동시에 검사하는 - 와 알 수 없는 기계로 눈을 들여다보는 검사를 받고 의사선생님이 직접 눈에 넣어두었던 보호렌즈를 빼는 것이 끝. 매우 깨끗하게 잘 되었으니 항생제와 근시퇴행방지제 - 그 참 훌루오로메토론 - 를 하루에 4번만 넣으라고 하셨다. (어제는 3시간 간격으로 처방을 받았다.)
시력검사 결과는 양안 동시에 측정해서 1.2~1.5 사이의 어떤 값이었다. 시력검사 당일보다 이후에 좋아진다는데 벌써 1.2면 도대체... 2.0도 보이게 되는건가. 물론 이렇게 벌써부터 컴퓨터로 포스팅따위 하고 있으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지만.
1.2와 1.5사이의 어떤 값인 까닭은 1.5의 숫자 5개 중에 1개를 읽지 못해서다. 사실 1.5도 선명하게 보인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 알아볼 수는 있었으니.
렌즈를 껴보긴 했지만 렌즈는 일회용이라 난시 교정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렌즈는 사실 안경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잘 안 보였었다. 어느 정도 먼 거리도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이 선명하게 맺히질 않는 상태.
안경의 경우는 지성피부의 비애로 매일매일 흘러내리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고, 짝눈이라 오래 끼다보면 기울어지는 것도 불편했고... 그리고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교정을 0.8까지만 해두셨었다. (한창 와우할때 맞춘 안경이라 정말 안경사분의 선견지명엔 감탄할 따름이다... 라식 전 검사를 할 때 안경끼고 교정시가 0.9~1.0이 나왔었기 때문에) 그래서 먼 거리를 보면 또렷한 느낌이 전혀 없었더랬다.
수술을 하니 바로 다음날인 오늘에도 벌써 먼 거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어제 병원에서 돌아와서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다가 - 눈을 쓸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침대에서 그만 잠들고 말았는데, 두 시간 정도 자고 나니 그 정도로도 눈이 상당히 잘 보이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에서 렌즈를 뺀 만큼 선명해지나보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또 그 정도가 남다르게 잘 보이게 되어 있었다. 좀 더 눈이 초점을 잘 맞춘다고 해야하나. 보호 렌즈를 뺐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을 학대하고 싶어지는 이 기분...
당분간 안약, 선글라스와 친하게 지내야겠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다만 그간 정이 많이 든(?) 안경과의 작별이 아쉬워서 안경은 기부하지 않고 일단 집에 가지고 왔다. 앞으로 몇 번 더 병원에 가야한다니 그때까지 안경과의 작별을 결정해야겠다. 안경을 십칠년간 썼는데 그간 유일하게 마음에 꼭 들었던 안경테라 기념삼아 남겨두고 싶기도 하고.. 남겨둬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갈팡질팡 하는 중.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는 동작을 한다.
사실 굉장히 충동적으로 결정한 수술이었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이뤄졌고 되돌릴 수도 없고 기분이 묘하기 그지 없다. 애인님은 그저 내가 화장을 자주 하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엄청 좋아하고 있다. 사실 요새 제모도 받고 있는데 제모 받기 시작한 뒤로 긴 바지를 거의 안 입는 것을 보고 (그간엔 사실 자가제모가 귀찮아서 한여름에도 긴바지 압고 다니는 날이 많았었음) 안경을 안 쓰게 되었으니 화장도 많이 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