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휴게실에는 흥미로운 책들이 꽤 있는데, 처음 입사하고 휴게실의 책들을 발견하고는 꽤 즐거웠다. 꾸준히 읽어보려 했는데 작심삼일. 두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오늘 또 한 권을 빌려왔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요즘은 좀처럼 성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은 거의 다 가졌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고. 뭐 그냥 있으면 좋고. 다른 걸 희생하면서 까지 갖고 싶지는 않은 것들이 남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성공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있다.
정체되는 기분은 싫다. 사실 좀 더 장기적인 계획과 목표가 필요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거대 프로젝트 - 결혼이라던지 이사 - 가 너무 커서 그런 것들을 해결하고 생각해야겠다고 미뤄왔다.
모든 것은 항상 때가 있다는 느낌이다. 결혼도 진작에 하고 싶었지만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고, 취직도 진작에 했어야 했지만 올해가 그 타이밍이었다. 물론 더 좋은 조건의 더 나은 환경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회사가 나에게 준 것들은 모든 것이 최고다. 지금 이 순간에 만난 이 책까지도. 사실 지금이 내 인생의 '성공'에 대해 물어보기에 얼마나 좋은 타이밍인가 말이다.
### 직업
아직도 나는 직장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조건들에 대해서 분명한 기준을 정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 회사를 내 첫 직장으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만족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 사람들이 나에게 적대감 보다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발견할 때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야심과 각오는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성과도 많이 거두었다. 처음 입사할 때 회사의 규모나 이런 부분에 대한 불만도 없잖아 있었지만 야심이 많았다. 회사를 성장시키고 나도 성장하리라고 생각했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공부해야할 것이 많았다. 전같으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망가고 싶어하던 내가, 긍정적인 각오 덕분에 적극적으로 찾아보다 보니 모르는 것을 혼자 찾고 연구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질문을 만들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즐거운 것이었다. 성적도 좋고 공부도 좋아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어렸을 때는 무언가를 궁금해해도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고, 사실 많은 것들을 궁금해지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거기서부터 사고를 확장하는 경험을 거의 해보질 못했다. 다행히도 문제를 진단하는 것에는 재능이 있었기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어떻게 잘 지나올 수 있었지만 대학원이라는 문턱에서 덜컥 걸리고 말았다. 대학원은 꽤나 뼈저린 판단 미스였다.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의 내가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도 몰랐으며, 각오보다는 두려움이, 공부를 해보겠다는 의지보다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사 공부라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이 무엇인지, 연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겠지만, 이미 한 번 실패를 했으므로 정말로 궁금한 것이 생겨서 견디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아무도 해결해놓지 않은 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학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남들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 남편
오늘 회사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열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요새 머릿속에 든 게 많아서 주절주절 적어나가다가, 무려 관심사를 13개나 적어놓고 그 목록에 남편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한 때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적어놓은 리스트의 맨 위에 남편이라고 쓰고 생각했다. 남편이 정말 중요한 요소였는데, 남편이 날 괴롭히는 점이 없어지니 관심의 저편으로 날려버렸구나.
어렸을 때, 아마도 한 열 살 무렵에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배우자를 찾는 것으로 정했다. 부모님의 관계를 보며 무언가 대단히 부러웠다. 강하게 결심할만큼.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갖겠다고 정했다. 부부가 직장 생활을 깊이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같은 직장에 다녀야할 정도는 아니고.) 십대 중반을 지나면서도 중요한 목표는 변함이 없었고 대신 약간 조정되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해야할 것. 그 무렵엔 부모님 사이가 많이 좋지 않았다. 내향적인 성향에, 불안심리가 있는 아빠와, 외향적이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엄마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두 분 사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고,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배우자라는 목표와 그 관계가 중요한 것이었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비교가 참 의미가 없긴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공적으로 연애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남들보다 일찍 목표를 정해서가 아닐까? 비교적 쉽게 얻었지만, 오래 원한 것이니까 잘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고 착하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남편님에게 애정과 관심을 돌려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애정을 영원히 잃지 않도록.
### 가정
분명히 어렸을 때의 나는 애정결핍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애정결핍이 사라진 것은 고3때였다. 엄마에게 커리어는 중요한 것이었고, 사실 엄마는 모성애가 넘치는 타입은 아니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아이였던 나는 꽤나 엄마의 애정에 굶주려 있었다. 그런데 나의 고3 동안 엄마는 평소답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가 집안일을 그만두신 이후로 거의 먹지못했던 (그리고 대학다니면서도 먹지못한) 아침밥을 먹고 다녔다. 엄마는 아침마다 학교에 태워다주고 저녁마다 태우러 오셨다. 학교의 야자실에서 공부하는 나를 위해 매일 저녁 도시락을 싸셨다. 나의 수다를 들어주기 위해 매주 일요일 같이 찜질방에 가기도 했다. 거기서 거의 4시간씩 엄마랑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하루는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인 고3이 나에겐 인생의 황금기였다.
엄마는 딱히 나의 고3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진 않았다. 사실 거의 궁금해하시지도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해 준 일에 대해서는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지금도 무슨 대단한 각오로 헌신하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 특유의 성격으로 집중력있게 엄마의 역할에 성실하셨던 것뿐.
그 때가 지나니 애정결핍, 외로움,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엄마는 나에겐 언제나 멋진 사람이다. 엄마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 가정에 대한 다소간의 방만함, 그렇지만 필요한 때 발휘할 수 있는 추진력과 집중력을 존경한다. 난 아이들에게 언제나 본받을 만한, 가장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으려나.
### 전진
내일 모레 서른이 되는 지금에도 나는 아직도 새로운 진로를 꿈꾼다. 십대의 나에게는 없었던 목표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되어야겠다거나 그런 것을 꿈꾸기에 그 때의 나는 너무 외로웠다. 인간은 안전하고 배고프지 않아야 꿈을 꿀 수 있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은 개발자이고 당분간 개발자일 것이고 개발을 좋아하지만 영원히 개발자로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나의 나침반이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중이지만. 영원히 그렇게 헤매진 않겠지.
어디선가 좋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자기 분야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고 싶으면 자기 분야의 책 100권을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한발 더 나아가고 싶으면 위인전을 100권을 읽으라나.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도 인생의 롤모델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100권쯤 읽으면 한 명 발견할 수 있을지도.
20대에 접어들어 다른 사람들을 보며 그 삶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며 느낀 것은, 바라는 게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간절하지 않으면 추진력도 없다. 욕망하지 않으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올바르게 욕망하는 것, 지속적으로 원하는 것, 한순간의 소유로 끝나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아득하다. 지속적으로 그런 것을 찾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으려나? 좀더 궁극적이고 영원하며 추구할만한 것을 찾아 보자.
대략 이 정도면 20대의 정리로 충분하려나. 30대와 그 이후는 앞으로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단기적으로, 내년에는 1주일에 한 권 이상의 독서와 한달에 한 권 이상의 독후감 쓰기를 목표로 해 두자.
바라는 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적어도 한 순간은 나로 인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로 인해 질투와 불행과 소외를 느끼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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