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로맨틱 코미디나 좋아하지 멜로 장르는 싫어합니다. 슬프고 무섭고 힘든 것은 현실에서나 보면 족하지 굳이 가상으로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애인님이 오며가며 흠칫흠칫 보고싶어 하길래 (정확히 말하면 궁금해 하길래) 멜로임에도 불구하고, 보러 갔습니다.

 물론 애인님의 관심사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였지 시간여행자의 아내 쪽은 아니었다는 걸 다 보고 나와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죠.(...공돌이가 로맨틱한 감상으로 봤을 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가 무려 제작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연 배우의 캐스팅도 브래드 피트가 직접 같이 트로이를 찍은 헥토르 역의 에릭 바나를 캐스팅 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여주인공 클레어의 시간대 - 실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시간대 - 에 맞춰 흘러간다고 하지만, 어쩐지 남주인공 헨리의 시선에 맞춰져 있습니다. 영화의 모든 흐름은 클레어의 시간대에 달라진 나이로 헨리가 등장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반복됩니다. 헨리가 없는 클레어의 시간을 이따금 보여주긴 하지만 그건 사실 헨리가 나타나기 전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지, 헨리가 없는 나머지 시간들을 클레어가 어떻게 채워가고 있는지 보여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자기 의지가 아닌 시간여행을 반복하는 헨리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여자인 제가 보기에 그보다 더 이상하고 안타까운 건 클레어입니다. 어렸을 때 만난 혼자만의 비밀 친구라는 것만으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클레어. 그리고 시도 때도 예고없이 사라지는 남편을 한결같이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이걸 애인님의 시각으로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더군요. 처음 만난 순간에 이미 '당신은 나에게 완벽한 남자야, 당신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여자. 게다가 남자 입장에서는 만난 첫날인데 바로 첫날밤을 *-0-*... (그거슨... 판타지!)

 그래서 사실 클레어는 여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헨리의 입장은 어떨까요? 당신이 현실에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아야하는 - 우리 말로 하자면 소위 역마살이 있는 - 처지일 때,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현실에 내려진 유일한 닻. 영원히 기다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사랑해주는 그녀. 이건 뭐, 정말 남자들이 보통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이런 느낌을 받을라나요? 이건 환상이잖아요!

 그리하야 애인님은 영화관을 나오며 설정에 대해 약간 불평을 하긴 했지만 사실 매우 좋아했고 저는 궁시렁궁시렁 하며 집에 왔다는 뒷이야기.

 달콤하고 그리 슬프지 않은 영화였어요. 펑펑 우는 종류가 아닌 알싸한 가슴시림의 느낌. 그래도 저는 곁에 늘 같이 있어주는 남자가 좋습니다. -_-; 브래드 피트 씨의 은근 로맨틱한 면을 들여다본 기분이네요. 영화 자체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잔잔하니 좋았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의 느낌이라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도 보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데 확신은 못하겠네요. ㅎㅎ

 두 배우가 정말 역에 잘 어울립니다. 제가 본 유일한 다른 멜로라고 하면 노트북인데, 노트북의 주연 배우인 레이첼 맥아담스가 나와서 열연합니다. 솔직히 비슷한 느낌의 같은 캐릭터이지 않을까 했었습니다. 발랄하고 해맑았던 노트북의 소녀였는데 시간여행자의 아내 에서는 섬세하고 강인한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감탄. 에릭 바나씨도 혼란에 빠진 20대와 다정하고 짠한 40대의 눈빛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클레어의 아역으로 나온 아이도 너무나 귀엽게 연기를 잘 합니다. +_+


 
시간여행자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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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vs 뇌 - 10점
장현갑 지음/불광


 이 책은 요새 매진하고 있는 yes24 별사탕을 모으느라 엄청 클릭질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책 제목 자체는 좀 그렇긴 한데 일단 '뇌'도 들어가 있고 하니 재미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서 그닥 진지하게 생각지 않고 wishlist에 넣어두었더랬다. 더불어 분류가 대중과학쪽으로 되어 있어서 그 쪽의 책이라면 재밌겠거니라고 생각도 했다.

 일단 예상을 초월하는 책이었다. 뇌 과학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쓰신 분은 서울대학교 전 심리학과 교수이신 장현갑 교수님이다. 뇌 과학 내용이 비중이 적거나 없는 것도 아니다. 심리학 교양서라고도 할 수있고, 대중의학서라고도 할 수있다. 가설의 발전과 그에 따르는 임상 실례등이 정말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따라가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 편안한 교양서 느낌으로 이 정도 글을 쓰실 수 있다는 점이 존경스러울 정도.

 사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뇌에 대해서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라고 서술된 책이 많았다. 실제로 지금도 뭐 많이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MRI라던가 하는 뇌 과학 관련 연구 방법이 진보하고 있는 중이니 언젠가는 뇌의 신비가 밝혀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로 우리가 느낄 것은 아마 기대와는 다른 충격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 컴퓨터를 인간의 뇌에 비유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마치 컴퓨터가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의 이해 내지 견해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애인님의 소개로 알게된 SF 작가 듀나의 소설에서 나는 충격적인 인식의 변화를 느꼈다.
 
"마음은 차분했다. 보통 때 같으면 심장이 쾅쾅 뛰고 숨이 가빠졌겠지만 그런 반응 역시 지금은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육체적인 반응의 부재가 정신 현상을 얼마나 쉽게 제어할 수 있는지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 스퀘어 댄스, 듀나 소설집 "태평양 횡단 특급" 중

 이것이 그 작가의 SF적인 직관인지, 아니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씌여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간 사람의 모든 것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고, 심지어 국민학생 때 읽은 어떤 SF는 몸은 죽어버리고 뇌만 남아 자신의 몸을 죽인 사람들을 향해 복수를 꿈꾸는 과학자를 소재로 한 내용도 있었다.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도 그의 업적들이 사실, 뇌 안에 있는 어떤 신비로 규명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실질적으로 뇌를 제외한 몸의 나머지 부분이 우리 자신의 반응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은 놀랍고도 신선했다.

 마음vs 뇌에 따르면 이 SF적 상상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지금까지 뇌 과학계와 심리학계에 발표된 논문들의 내용을 요약하고 인용하여 우리의 마음, 감정, 느낌, 생각들이 어떻게 뇌에 영향을 미치는지, 또한 그런 영향이 우리 몸에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과학적 방법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무슨 믿기 어려운 종교적 이야기로 치부되기 쉬운 명상 - 마음의 조절 - 을 통해 어떻게 뇌를 훈련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혹은 이 연구에 협력한 달라이 라마의 저서를 먼저 보았더라면 픽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지 모르지만- 사실 과거에 이미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열어보고 그런 적이 있다..;; -  실제로 서양 과학의 도구로 측정되고 관찰된 결과로는 명상은 우리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영혼? 육체? 무엇으로 정의될 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영화나 만화도 있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부딪혔더니 영혼(?)이 뒤바뀌어 서로 상대방의 육체로 지내게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A와 부딪혀 그와 몸이 뒤바뀌었다면, A의 몸에 나의 영혼이 들어간 존재가 나일까? A의 영혼이 들어간 나의 몸이 나일까? 아니 나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가 있는 그것이 과연 나답게 행동할까?

 이 책은 그런 상상에 대한 일종의 과학적 답변이라고 하면 되겠다. 두세시간만에 뚝딱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씌여졌고, 뇌에 관한 최신 심리학적 연구들이 요약되어 있어 추천할 만하다. 재미있게 봤다. 어찌 보면 그간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하며 상상력을 모두 동원해 살펴봤던 SF적 질문에 해답을 얻은 것도 같다. 강력추천하는 기분으로 무려 별점 다섯 개 ....

 저자의 이력이 무척이나 화려하다.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이시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한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영남대 명예교수와 가톨릭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책으로는 심리학자라기보다는 의학자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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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퀸(the queen)

from 문화생활/영화 2009. 10. 22. 08:53

 무려, 지금, 살아있는 영국의 여왕 - 혹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 사건 - 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근대사는 잘 모르기도 하고 흥미가 없기도 하고 더더군다나 외국의 일이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보게 되었다. 덕분에 영화를 보다말고 멈춰놓고 위키피디아를 뒤져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으로 분류되어 있는 지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서 과연 무엇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인지, 어떤 방식의 결말이 내려질지 도무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의 2/3이 흘러간 시점까지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궁금했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블레어 총리의 입에서 나온다.

 우리는 영국이 입헌 군주제 국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입헌 군주제는, 군주가 있으나 헌법에 입각한 정치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군주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와 같이 외교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는 근대사 50년간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 더 퀸의 주인공 - 가 만들어온 이미지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근현대사 50년여년간 첫 대통령이 나왔고, 민주화 투쟁을 겪었으며,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지금 이 어찌보면 긴긴 세월 동안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여왕으로 있었고 왕실을 지켰다.

 여왕은 왕실의 전통과 품위를 지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언제고 자신이 '국민의' 여왕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는다. 자신의 원칙, 그리고 역사적 전통 앞에 국민이 있다는 그 사실.
 
 나는 영국의 왕실이라는 것이 문화적 재산이라고만 생각했지 다르게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왕실의 살림살이는 어찌보면 영국 국민들에게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감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영국 왕실의 존재를 당연히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입헌 군주제가 와해되고 공화제 국가를 만들자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 왕실이 폐지되고 사라지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 내내 여왕으로 존재해 온 여왕의 품위와 존재감이 무척 아름답게 그려지는 영화였다.

 덕분에 (다른 나라지만) 간만에 현대사 공부를 좀 했다. 그리고 반만년 역사라는 자랑 앞에 소홀하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교육에 대해 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우리의 문화적 재산에 불과할 뿐 정말 중요한 건 근대사 현대사에 있는데 2월 봄방학 시즌에 현대사를 배우는 현실이 위태롭기만 하다. 아마도 아직,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더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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