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포스팅 했듯이, 공짜 예매권이 남아 영화를 보러 갈까 하고 상영 중인 영화를 살펴 봤습니다. 그런데 요새 상영중인 영화 중에 그 다지 보고 싶거나 고를 만한 영화가 없더라구요. 동네 영화관에서 현재 상영중인 영화는 '굿모닝 프레지던트, 청담보살, 시간 여행자의 아내, 바스터즈, 2012' 이게 다 였습니다. -_ㅠ 개봉 예정작 가운데서는 보고 싶은 영화가 꽤 있는데 (백야행이라던가, 솔로이스트 같은...) 이 놈의 예매권이 11월 15일 한정이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가 흥행 대작이라 함은 영화가 훌륭해서...는 절대 아닙니다. 경쟁작이 전멸한 시점을 잘 맞췄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큰 스케일로 때려부수는 영화는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잠은 안오지 않겠나 그 정도 기대감은 가지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갠적으로 디 워도 망한 스토리라인 속에서 때려부수는 건 그럴듯했다 생각해봅니다. -_-;; 볼거리만 화려해도 돈은 아깝지 않으니까요.
재난 영화 주제에 스토리를 억지로 쑤셔넣으려고 과하게 노력하는 바람에 내용이 질질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상영시간 157분 (2시간 +37분) 게다가 지나치게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으려 노력하다보니 터지고 부서지고하는 재난 장면 보다 그 많은 인물들이 서로 드라마를
찍는데 골몰하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그 드라마가 감동적이고 아름답냐? 그것도 아닙니다. 재난 앞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다들 가족 보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이고 피해갈 길 없는 대재앙 앞에서 휩쓸려 죽어버릴 뿐인 무기력한 존재들이죠. 솔직히
그렇게 인물 바꿔가며 몇 번씩 보여줘야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을 두 명으로 잡았는데 주인공 중 1인 - 지질학자 에이드리안 헴슬리 박사 - 는 한 번도 재난에 휩쓸리지 않는, 재난의 관조자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예언자에 가까운 그는 미리 예정된 시스템에 의해 구원받을 운명이죠. 다른 주인공 1인 - 존 쿠삭 주연의 잭슨 커티스 - 은 재난보단 스릴러 추격영화에나 적합해 보이는 '절대 죽지 않는' 타입의 주인공입니다. -_-; 물론 절대 죽지 않는 종류의 주인공은 이런 장르의 미덕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곁다리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살아남으면 좀 현실감이 아주 없죠. 심지어 영화는 주인공과 함께한 일행들도 자비없이 살해해버리는 와중에 주인공만은 정말 당당하게 살아남게 만들어서 재난의 인간 차별을 느끼게 합니다.
더불어 휴머니즘이랍시고 주장하려거든 지구가 터지기 전에 발휘했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탑승객들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점에는 정말 분노가 폭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재난도 돈 보고 사람 차별하는 시대가 와 버린 것이에요. 이게 무슨 휴머니즘?
미국의 지질학자 에이드리안 헴슬리 박사는 인도의 광산에서 친구 사마탄의 제보로 인해, 지각 밑부분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태양의 흑점에서 튀어나온 뉴트리노가 지구 내부를 달궈서 지각을 녹이고 있는 것으로, 몇 년 안에 지각 대변동이 일어나 지구의 문명이 모조리 멸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G8정상회의를 열어 극비리에 우주선 건조 계획을 세우고, 모나리자와 같은 미술품을 안전한 곳으로 빼돌립니다. 한편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극비에 붙여져 있고, 빼돌려진 미술품이 어디에 있는가 의심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하려던 루브르 박물관장은 무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말죠.
평범한, 아니 사실 비인기 작가의 극치 - 영화 내에서 422권 팔린 작가로 묘사되는 - 잭슨 커티스는 지각을 일삼고, 자기 일에만 빠져서 사는 타입의 남자로, 컴퓨터질만 하다가 부인에게 이혼당한 평범한(!) 남자입니다. 솔직히 이거 존 쿠삭의 이미지랑 잘 어울리는 역이었다고 생각해요. 무던하고 평범한, 소박한 타입의 가장을 표현하기에 적절했달까요. (이런 남자가 슈퍼 히어로급 생존력을 보여준다는 아이러니도, 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죠.)
아이들은 부인과 그의 새남편 '고든'과 함께 사는데, 잭슨은 어느날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떠나죠. 전 부인과 함께 자주 가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호수로 갔는데 가 보니 호수는 싹 말라있고 군인들이 나타나 이 장소를 떠나라고 지시합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캠핑장으로 가 보니 '찰리'라고 하는 정신이상자 같은 인물이 나타나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임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잭슨은 찰리를 단순히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해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하지만 같은 날 캘리포니아에 있던 잭슨의 전 부인은 엄청난 규모의 지진에 휘말리게 되어,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라고 요청하게 되죠.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직장에 출근한 잭슨.
잭슨의 직업은 '유리'라고 하는 이종격투기 후원자격의 인물이라고 해야하나요? 아무튼 이 인물의 뚱땡이 아들 둘의 전담 운전입니다. 유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으로 가서 내려 주는데, 생긴 것처럼 싸가지 없게 구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 지구는 멸망할 거고 우리만 살아남을 거야'라고 잭슨을 놀리듯이 말합니다. 그제서야 잭슨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죠. 마침 잭슨의 리무진 아래 땅도 쩌적- 갈라져 주시고.
그래서 드뎌 위기를 느낀 잭슨, 리무진을 타고 달리며 부인에게 전화를 합니다. 참 편리하게도, 길게 설득도 할 필요 없죠. 잭슨의 전화 내용을 믿지 않는 부인의 집은 지진으로 마구 흔들리고, 이 와중에 시의 적절하게 도착한 잭슨은 고든을 포함한 그의 가족들을 전부 리무진에 태우고 공항으로 내달리죠. 집을 나오자마자 폭삭 무너져버리니 이제 가족들은 잭슨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여기서 무슨 추격영화 급의 시퀀스를 보여줍니다. 긴박하게 바로 뒤에서는 땅이 무너져 내리고 앞에서는 땅이 솟구치고, 건물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여주죠. 흔해빠진 다리 밑을 통과하는 시퀀스까지. 리무진은 참 튼튼하기도 해요. 아무도 다치는 사람하나 없이 공항까지 도착하거든요. 아 물론, 주인공 앞을 가로막으며(!) 느릿느릿 달리고 있던 한 노부부의 차는 솟아오른 땅에 쳐박는 제작진이지만...
공항에 도착했으나 죽어있는 비행기 조종사... 역시 또 편리하게도 고든이 경비행기 딱 2시간 조종해 본 경험이 있고, 막무가내로 고든을 운전시켜 비행기를 출발시킵니다만... 이게 무슨 2종 오토도 아닐진대 비행기는 잘도 출발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활주로가 붕괴하는 가운데 간신히 비행기는 날아오르고, 마구 무너지는 건물들을 피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으로 갑니다. 찰리가 알고 있다는 그 인류 최후의 생존계획, 극비리에 건조되고 있는 우주선에 얻어타기 위해서죠.
옐로우스톤 국립 공원에 가 보니 화산이 마구 폭발하려는 찰나. 찰리는 함께 가는 것을 거부하고 지도를 줍니다. 그리고 옐로우스톤에는 거대한 화산이 솟아오르죠. 화산 폭발의 장면이 너무도 장엄하고 멋져서 잠시 저도 빠져들었습니다. 찰리는 마지막까지 그 화산폭발의 광경을 중계하다가 죽어버리구요.
간신히 찰리의 캠핑카를 몰아서 비행기가 기다리는 곳까지 가서 아이를 비행기에 태우고 지도를 찾는 잭슨. 간신히 지도를 찾아 쥐자마자 그 사이에 땅이 무너져서 캠핑카가 땅속에 쳐박혔으나 우리의 질긴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간신히 꾸역꾸역 기어올라 지도를 거머쥐고 달리는 비행기에 간신히 탑승하여 펼쳐보니 '중국'. 솔직히 지도만 건네주고 주인공은 죽어버리는가 하고 잠시 기대했는데 그런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참 사람차별적인 재난입니다. 화산탄과 화산재가 날아오는 판국에도 안 죽는 주인공-_-;;;; 아무튼 경비행기로 중국에 갈 수 없다보니 좀더 큰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게 됩니다.
한편 헴슬리 박사는 몇 달 뒤일 것으로 예상했던 지구 멸망의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죠. 아버지만은 빼돌리기 위해서. 그런데 아버지는 배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듀엣으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자신의 파트너를 두고 갈 수 없다고 조용히 거절합니다. 미 대통령으로 나오는 사람은 흑인인데 (오바마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일까요?) 그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알고보니 이 딸이 모나리자를 빼돌리던 그 사람이군요(!). 생각보다 이르게 닥쳐온 파국 앞에서 대통령은, 딸은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태우고 본인은 미국에 남아 국민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합니다. 어찌보면 죽음 앞에 의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대통령의 사연이나 헴슬리 박사의 사연이 알고보면 전혀 다를 바 없는 거기서 거기인 태도죠. 자기 가족은 살리고 싶어하는 이기주의를 가족주의로 포장하고,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 가족은 안전한 곳에 있다는 걸 아니까 취할 수 있는 태도...
화산이 터져 공항도 수라장입니다. 관제탑에서는 비행기의 이륙을 통제하고 있고, 그 가운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이 나옵니다. '지구는 망할것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잭슨은 '유리'를 만납니다. 유리는 중국행 비행기를 예비해 두었으나, 관제탑의 통제로 부조종사를 구하지 못해 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편리하게도 고든을 팔아 비행기를 얻어탄 주인공 일가.
주인공 일행은 하와이를 경유하여 급유하려 했으나 하와이는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고, 하는 수 없이 연료부족으로 남중국해에 불시착 하려 합니다만.... 지구가 이미 엉망진창으로 어그러져 있어 어쩌다보니 불시착 하려던 위치에는 그들이 가고자 하는 '초밍 계곡'이 이사를 와 있습니다. (참 편리하죠?) 물론 활주로 따위는 없기 때문에 빙하 착륙을 시도합니다. 간지나는 러시아인 조종사 '사샤'는 나머지 사람들을 차에 태워 먼저 탈출시킵니다. 자신은 비행기를 세우고 내리겠다구요. '유리'가 자동차를 여러대 가지고 았기 때문에 일행은 그중에 좀 튼튼해보이고 좋은 차를 타고 비행기 뒷문을 열어 차만 빠져 나옵니다. 비행기는 빙하 끝에서 간신히 멈춥니다. 사샤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스치는 그 순간....절벽 아래 쳐박혀버립니다.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정말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하러 비행기를 잠시 멈춰서 불쌍한 조연에게 잠시 미소를 짓게 만들었을까요. 성호를 긋고 마지막을 준비한 그 담담함을 잃어버리고 잠깐 생을 기대한 그 순간을 뭉개버리는 잔인함. 이 영화가 시종일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 그렇습니다. 참 화딱지가 나죠.
'사샤'가 죽자 '유리'의 여자친구 '타마라'는 안타깝게 사샤의 이름을 부릅니다. 알고보면 유리와 같이 살면서도 '사샤'와 바람을 피우는 사이였던 것이죠. 한 마디로 사샤는 간통죄로 '처단'당한 거랄까요. 빙판위에 오돌오돌 떠는 일행은 마침 동물들을 수송 중인 헬기를 발견하고 손짓을 합니다. 어째 헬기는 순순히 내려와서 일행을 태워주려고 합니다만, '패스'를 요구합니다. 유리는 자신만만하게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은 그린패스라고 설명하고 헬기에 탑승하죠. 나머지들은, 심지어 여자친구 '타마라'조차도 패스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찌보면 다정하게 교감을 나눴던 것 같은 느낌은 다 허상에 불과하고, 유리는 생존 앞에서는 지금까지 헤쳐나온 일행도 간단히 버려버리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거의 다 와서 좌절한 주인공들. 어떻게든 초밍 계곡으로 가기위해 걸어가다보니 낡은 트럭 한대가 지나가는 군요. 이 트럭은 중국인 용접공의 동생이 몰고 있는 트럭으로, 중국인 용접공은 자신의 가족을 10억짜리 방주에 몰래 싣기 위해 동생을 부른거죠. 간신히 트럭을 얻어타고 통제구역에 도착한 그들. 용접공은 난색을 표하지만, 그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하는 수 없이 이 많은 일행을 같이 구해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큽니다..)
한편 유리의 일행이 타기로 예정된 '우주선' 3호는 지진의 여파로 망가져서 탑승이 중단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우주선'에는 순조롭게 탑승이 이뤄지고 헴슬리 박사와 대통령의 딸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선별된 사람들인지 궁금해 합니다. 아랍계 왕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타는 것을 보면서 깨닫죠. '아 이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았군요!' ..그렇습니다. 10억 유로나 되는 돈을 두당으로 받아 챙겨 우주선(!)을 건조했던 것이죠. 그 와중에 G8 세계 정상들은 다 우주선에 공짜로(?) 탑승했으나(그러니까 모 국가 대통령씨 지금 G20유치했다고 좋아할때가 아니라구요...), 10억 유로들이 타기로 한 3호선은 고장나서 탑승조차 안 되고 있는 것이구요.
주인공들의 일행은 오묘하게 4호선의 구석진 곳을 뚫고 요리조리 잘 탑승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유리의 품에 안겨 있던 타마라의 개가 타마라를 발견하고 멍멍 짖게 됩니다. 타마라는 그 소리를 듣고 개를 부르죠. 개가 쫄쫄 달려가는 광경을 보고 탑승을 못하고 있던 유리와 그의 아들들은 타마라는 배에 탔음을 알게 됩니다. 어찌보면 통쾌한 반전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주인공들의 사정도 순탄치가 않습니다.
헴슬리 박사는 친구 사마탄에게서 전화를 받습니다. (맨~위에 나왔던, 최초로 지구멸망을 발견한 그 친구말이죠) 아무도 사마탄을 픽업하러 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는 인도에서 거대 해일을 바라보며 최후의 순간에도 제보에 충실합니다. 해일이 오고 있다고. 그리고 가족과 함께... 아마도 쓸려나갔겠죠. 그 장면에 대해 영화는 별반 고뇌도 하지 않습니다. 인류를 구하고 싶어한 선지자도 그냥 해일 밥에 불과합니다. 해일은 이미 지구 곳곳을 덮치고 있죠. 헴슬리 박사의 아버지가 탄 배, 헴슬리의 아버지의 재즈 연주가 파트너는 사실 아들이 일본 여자랑 결혼해서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사이입니다만 대재앙을 빌미로 잠깐 통화나 해볼까 전화를 하죠. 그의 손녀가 잠깐 받아 아버지에게 건네, 대화하려는 찰나 해일로 인해... 뒷일은 보여주지 않지만 보나마나 뻔하죠. 파트너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죠. '너무 늦었어' 그리고 그들이 탄 배도 가볍게 해일에 삼켜져 전복되어 버리죠. 이 장면은 어찌보면 가장 처음, 헴슬리 박사가 인도의 광산에 도착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사마탄의 아들이 큰 배를 가지고 놀다가 헴슬리의 차 때문에 뒤집혀버리거든요. 참 의미심장하죠.
아무튼 사마탄의 제보로 계산해보니, 거대 해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시간은 30분도 채 남지 않은 겁니다. 헴슬리 박사는 고뇌합니다. 3호선에 타지못해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세계 정상들 앞에서 호소합니다. ...그 3호선에 타지 못한 사람들이 뭐냐하면 실은 '10억유로', 아니 '유리'인거죠. '유리'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으로 대변되는 사람들. 자기 생존 앞에 필요하면 실컷 이용하고, 필요 없어지면 남을 싹 버리고 외면할 수 있는, 돈으로 자신들의 살 길만 모색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외치는 휴머니즘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원이 초과되더라도 남은 사람들을 다 태우기 위해 배의 함교가 열리는데, 문제는 이것이 주인공들에게 위기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몰래 배의 구석진 데에 타보겠다고 용접공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는데 급작스레 배의 문이 열리면서 기어가 돌아가는 것이죠. 용접공의 다리가 끼이면서, 용접공이 들고 있던 대형 드라이버?가 기어 사이에 끼이고, 불쌍한 고든은 그 와중에 기어 속에 빨려들어가 저며집니다. 참으로 편리한 '가족주의'라 아니할 수 없네요. 과연 이혼남 주인공이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서 방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고든은 이렇게 실컷 비행기 조종에 이용당하고, 주인공을 버리고 싶은 갈등의 순간에서 끝까지 태워온 죄로 비극적이고 끔찍한 죽음을 맞고 맙니다. 더불어 선행을 베푼 용접공은 다리를 잃고 불구자가 되고 말고요.
결국 10억유로들은 무사히 탑승(!)하고 말죠. 불쌍한 유리는 아들들을 배에 태우고 본인은 낙사하고 맙니다. 심지어 10억 유로의 뚱땡이 아들들은, 아버지 잘 둔 덕에 살아남았는데 고든은 부인 잘못 만난 죄로 끔찍하게 죽고 만 것이군요. 네. 정말 영화의 사람 차별이 극에 달했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 일행이 쳐박아두고 온 도라이바 때문에 문이 완전히 안 닫혀 출발하려는 시점에도 엔진이 점화가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 와중에 해일이 덮쳐오고, 배의 아랫부분은 물바다가 되죠. 불쌍한 타마라는 이 와중에 주인공의 딸과 자신의 개만 살리고 물에 잠겨 죽고 맙니다. 유리한테 잘난척한 것도 잠시.. 불쌍한 타마라. 타마라는 성형미인이라 죽음을 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잘난척해서?...
주인공들이 탄 배만이 문이 안닫혀 엔진이 점화가 안되어 방향이 통제가 안 되는 가운데 해일에 떠말려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급히 쓸려가기 시작합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쳐박혀 배가 망가질 위기에, 원인을 찾던 헴슬리 일행은 주인공 일행을 발견합니다. 실은 그들은 옐로우스톤에서 잠깐 만났던 사이거든요. 그리하여 헴슬리 박사는 주인공들을 구하러 배 아래쪽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이미 차단막이 내려져 주인공들을 구하러 가기는 불가능한 상황.
주인공들에게 부탁하죠. 이래저래해서 문이 안 닫히니까 닫히게 해달라. 잭슨은 대충 상황을 알아듣고 문제를 해결하러 갑니다. 친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잭슨을 싫어하고 고든을 좋아하던 아들 '노아'는 그 와중에 남아있는 한명의 아버지라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참 상황판단 빠르군요) 잭슨을 따라가서 도와주죠. 혹시 주인공들이 죽나 싶기도 했는데 '노아'가 죽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주인공들은 무사히 살아 돌아오게 되고 문도 닫히고 엔진도 점화되고 드디어 '노아의 방주'는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그런대로 리얼리티가 잘 살려진 부분이라고 하면, 우주선 일 것 같았던 그것들이 사실은 그냥 단순 '배'였다는 점입니다. 2012년에 실제 승객들을 태우고 갈 법한 우주선이 건조된다고 해도 웃기죠. 애초에 건조된다고 해도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아직 지구 외에 인간이 살 만한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각의 급변동 가운데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희망봉'이 이제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게 솟아올라 지면이 노출되었다는 것이 알려집니다. 그리하여 일행은 희망봉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난민우주선(?)이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고 정원초과로 10억유로 같은 것들을 잔뜩태워버린 나머지 전염병이 발생하여 수뇌부는 전멸 그들의 배는 디스트릭트9에 수용되게 되는 것이죠(?!)는 헛소리고;;; 다들 마치 1주일이 지난 성서의 그 장면처럼 배 밖으로 나와 햇볕을 구경하며 영화는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잭슨은 고든을 좋아하고 자기를 싫어하던 아들의 '사랑'을 되찾았으며, 정신적인 문제로 기저귀를 떼지 못했던 딸은 기저귀도 뗍니다. 부인은 그 와중에 사랑도 고백해 오죠. 고든이 죽어버리니 모든게 참 편리하군요. 불완전하고 위험했던 불안한 가족은 대 재앙속에서 완성된 가족으로 거듭납니다. 친자식도 아닌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고 아이들의 친부를 살려준 불쌍한 고든만이... 비극속에 잊혀지는군요. 이것을 스토리랍시고 써놓았는데 이게 성장드라마라 주장하면 정말 저는 분노할 것입니다. 헴슬리 박사는 대통령의 딸과 좋은 사이가 되네요. 이 와중에 적절한 엔딩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사람 골라가며 잘 죽이는 영화도 참 드물 것 같네요. '주인공들만' 살아남는 종류라면 그냥 허구적인 상상이므로
이해해 주려고 했지만 그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온전한 '가족'으로 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는 가차없이 저며버리는
영화... 무섭습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내용은 참 쓰레기입니다. -_- 어찌보면 할리우드 전형적인 스토리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면면이 들여다보면 고뇌하지 않고 만든 것인지, 아니면 각본가의 인간 혐오가 극에 달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후자쪽에 한 표 입니다.)
차라리 디스9의 나약하고 자조적이고, 그래서 더 인간미 넘쳤던 주인공에 비해 존 쿠삭의 그 달관한듯한 덤덤함은 굉장히 어울리지만 또 한편 지나치게 할리우드 영웅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전형적 할리우드 식으로 흐르려고 했으나 망한 - 감동 대신 잔혹함이 남은 - 스토리라인에 재난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아니 솔직히 훌륭했습니다...화산 폭발장면앞에 감동하고 있는 찰리에게 200% 감정이입했더랬죠) '스토리를
만들어 볼려고 붙였으나 관객의 지루함만을 유발하는 그게그거 같은' 장면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한 장면의 '비중' 자체가 너무
낮아서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좀 적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시원시원한 맛은 있긴 했습니다.
스케일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디스9랑 너무 비교됩니다. 디스9는 스토리와 휴머니즘, 그리고 스펙터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고 치면 이 영화는 정말 재난입니다...-_-;
반호프는 기차역 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어느 기차역을 배경으로 하여 이뤄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연극입니다. 이 연극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며 (Non-verbal), 가면을 쓴 배우들이(Mask) 나와 연기를 펼칩니다. 연극이란 대사와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핵심일 것 같은데, 표정은 마스크로 가리고 대사는 없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줄거리는 프로그램북에서 인용해보았습니다.
어느 작은 기차역의 분주한 아침이 오늘 역시 시작된다. 매표소와 잡화점이 문을 열고 역 직원들이 이곳저곳을 챙기는 동안, 청소부 아주머니 소라도 아침 역 단장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떤 할아버지 동수는 드디어 오늘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한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탓에 소라 앞에만 서면 굳어버리는 동수...
소매치기들과 외국인들, 여자친구를 찾아가는 청년 등 기차역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동수를 돕기 위한 동네 할아버지들의 작전들이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하나의 캐릭터의 우는 얼굴 웃는 얼굴 등 같은 사람의 표정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가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한 캐릭터 당 하나의 가면이 있었는데, 이 가면은 좌우 대칭으로 생긴 가면이 아니라 묘하게 좌우가 다르도록 만들어지고 굴곡이 심하게 진 가면이라 극장의 조명과 어우러져 묘하게도, 뚜렷한 하나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대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몸짓, 그리고 마스크의 생김새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더불어 캐릭터 당 하나의 얼굴밖에 없는데도, 좌우의 비대칭 때문에 배우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어느 위치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마치 여러가지 표정을 짓는 듯한 놀라운 효과를 주었습니다. 가면은 달랑 한 개 인데요!
지난 번에 보고 왔던 2인극에서도,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소품과 억양, 목소리, 자세등의 변화를 주어 다른 사람임을 충분히 표현했지요. 그렇지만 무대 위에 어떤 '배우'가 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호프에서는 워낙에 많은 가면 - 즉 많은 캐릭터 - 가 등장할 뿐더러 실제로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가면, 그 캐릭터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과장된 몸짓인 것 같은데, 어색하지 않게 몸짓 만으로 캐릭터를 달리 연출하는 배우들의 능력이 기가 막히더군요. 솔직히 말해 어느 배우가 어느 역을 연기했는지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진짜 각각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되어 무대 위에 엄청 많은 사람이 등장했던 것 처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배우의 숫자는 고작 4명! 마지막에 탈을 벗고 인사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놀랍더군요.
묘사를 배우들의 몸짓과 가면에 100% 의존한다면 이 연극의 서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음악이 동반됩니다. 캐릭터 들의 감정, 상황에 맞는 음악이 바뀌어 나와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과 음악이, 연극이라기보단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 점도 꽤 즐거웠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와서 이 연극을 보는 것이 참 꿈을 복기하는 것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캐릭터가 스쳐 지나가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줄거리는 기억이 나고 음악을 통해 상황은 이해했지만 아무 대사를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꿈에서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깨고 나서 상황은 알지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한바탕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요번의 연극 감상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아주 즐거웠어요.
소소하게 아쉬웠던 점들도 있었습니다.
우선 연극을 보며 너무 외국 번안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창작집단 '거기가면'의 창작극으로 되어 있는데, 제목과, Non-verbal mask theatre 라는 설명이 참 어색했습니다. 그냥 무언 가면극이라고 하는 편이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가져올 것 같았거든요. 저에겐 약간 거부감도 주더군요.
또 하나 관객과 같이 상호작용 하는 것은 좋았는데 약간 불쾌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화장실 뚫는 장비(?)로부터 관객석으로 물이 튀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튀지 않았고 그 물이 그냥 깨끗한 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물이 튀었으면 불쾌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사탕이 관객석으로 날아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건 참 좋았는데, 강아지 역을 하던 배우가 사탕을 물었다가 뱉으시더라구요. ㅠ.ㅠ;;; 물론 역시 저한테 날아온 건 아니지만 이런 보기가 좀 ...싫었습니다.
극의 서사 구조가 좀 약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느낌이라 볼거리는 많은데, 이야기 구조는 하나밖에 없거든요.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지나가는데, 의미없이 지나가는 캐릭터들이 많아요. 많은 가면 속에서 소박하고 소심한 사랑 달랑 한 커플은 조금은 아쉬운 기분을 느끼게 하더라구요. 차라리 같은 구조 안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커플을 두 쌍 등장시켰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표소 처녀와 잡화점 총각은 초장에 티격태격하다가 별반 사건 없이 극 말미에서 깊은(?) 사이가 되는데, 동수 할아버지의 사연 말고 이들의 사연도 비슷한 비중으로 병렬로 이뤄진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더 복잡하게 느껴지려나요?)
약간의 아쉬움은 제하고,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보통의 연극과는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사실 영화보다 뮤지컬로 먼저 보고 내용을 거의 알고 있었고 뮤지컬을 워낙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원작 영화에도 흥미가 가서 (사실 공짜라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곰tv에서 무료로 보여 주길래 봤는데 참고로 홈cxv 나 oxn 같은 수준으로 광고를 봐 줘야 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봐야할지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에요. 밀려오는 감동의 쓰나미. 내용을 끝까지 다 알고 봤는데도 심금을 울리는 맛이 있더군요. (어쩌면 뮤지컬로 먼저 봐서 더 감동을 했는지도 몰라요.)
줄거리는 위의 제 글에서 약간 수정. 뮤지컬이 거의 영화를 완벽 재현 수준으로 잘 살렸습니다. 그렇지만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 자체에서 오는 몇 가지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지요.
88년도에 MBS에서 가수왕을 했던 최곤은, 현재는 사고뭉치로 전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대마초에, 폭력 등등으로 유치장을
오가고, 덕분에 합의금을 물어주기 위해 매니저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최곤 본인은 아직도 자신이 톱스타인양 '가오'를
세우는 사람이죠. 방송국의 김국장은 합의금을 빌려주는 대신, 최곤을 영월 방송국에서 DJ로 방송하도록 합니다. 싫어하는 최곤을
매니저는 열심히 달래서 영월로 내려가죠.
한편, 원주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던 강PD는 방송사고 막말로 인해 영월 방송국으로 좌천됩니다.
영월의 방송국은 방송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방송을 한지 오래된 중계소 규모입니다. 영월 방송국은 사라지고 원주 방송국으로 이전할 날을 기다리던 국장은 매우 열을 내지만 어찌저찌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이라는 라디오 프로 방송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최곤이 얌전히 방송을 할 리가 없습니다. 주는 대본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데다가, 방송 중에 커피를 시켜서 방송실로 다방 레지를 불러들이는 지경이죠. 그러다 우연히, 다방 레지에게 게스트로 아무거나 이야기 해 보라고 시키는데, 레지는 엄마를 그리워 하는 슬픈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비오는 날의 잔잔한 사연과 최곤의 애드립은 대 히트가 되어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영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 됩니다. 그리고 갈등이 시작되지요.
영화의 주연배우는 최곤(박중훈), 박민수(안성기) 두 사람입니다. 뮤지컬에서는 두 사람이 엇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데 - 뮤지컬은 주연 배우의 솔로부분을 넣으면 비중 조절이 쉽죠 -, 영화는 거의 안성기씨의 원맨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곤을 달래고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 가족을 두고 갈등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하는 안성기씨의 달관한 듯한 미소가 짠한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뮤지컬이 박민수라는 캐릭터의 내면의 갈등, 주위 환경과의 갈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고 최곤이 조금은 평면적인 인물이라면 영화는 안성기 씨의 솔로 영화 같은 이 영화에서 왜 박중훈인가, 왜 그가 또다른 주연인가를 보여주는 강한 클라이막스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두 주연배우를 가지는, 최곤의 성장드라마와 두 남자의 멋진 우정이 완결되는 것이에요.
호영이의 이야기를 듣고 호영이의 눈물을 보고 윽박을 지르면서도, - 니가 뭘 잘못했다고 울어! - 사실 자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표현을, 단지 한 장면으로 절절하게 전달하는 강력한 연기. 그 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박중훈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될 정도로 말이죠. 밋밋하고 뭐든지 관심없는 듯한 철딱서니 왕년의 톱스타와 한결같이 헌신적인 그의 매니저의 관계의 일방성에 화를 내고 섭섭해하던 - 매니저에게 감정이입끝에 서운해진 - 관객을 휘어잡는 그 연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의외로 뮤지컬의 마지막을 보고 연상했던 것과는 내용면으로는 같지만 표현면으로는 많이 달랐습니다. 뮤지컬의 마지막은 그들이 함께 우산을 쓰고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뒷배경의 노을과 어울려 마치 앞으로는 뭔가 다를 것 만 같은 인상을 줬죠.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요런 표현이 더 있습니다. 박민수가 최곤에게 가방을 던지고, 최곤이 받습니다. 그리고 최곤이 다시 박민수에게 가방을 도로 던지지만 무신경하게 대충 던지기 때문에 비 젖은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그리고 박민수는 허겁지겁 가방을 주우러 달려가죠. 이것이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들의 관계는 영화에서 표현해온 바로 그 관계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 그닥 변한 건 없어요, 원래도 그들은 그런 사이였어요 같은 담담하고 작은 표현이 리뷰를 쓰게 만드는군요.
영화의 연출 중에서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 있었는데, 김밥 말이죠... 안성기씨 표정 연기와 함께 정말 같이 목이 메이는 걸작 연출이었습니다.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치고는 음악 면은 솔직히 조금 그랬어요. 노브레인의 연기가 귀엽긴 했지만 뮤지컬이 영화보다 훨씬 호소력있고 매력적이게 구성되어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그 안성기씨와 박중훈씨의 연기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죠. 그리하야 뮤지컬, 영화 양쪽 모두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