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from 일상/일기 2007. 11. 14. 18:37

수능을 본 지 이제 6년이나 지났다.

그렇지만 웹툰들을 보고 있으려니.. 곧 수능인 모양?

매년 11월 두번째 수요일이 수능이라고 알고 있으니 아마도 오늘이었겠다.





고3이라고 매일매일 저녁 도시락을 싸 주시던 엄마가 수능 당일날엔 차까지 태워주셨더랬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자니 우리 학교 애들은 다 목동아파트 사는 애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수능을 본 학교 앞은 차로 미어 터졌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지각직전에 들어갔는데,

지금이야 지각대마왕이지만서도 고3때는 1년 내내 교실에 제일 먼저 갔었다.

엄마는 딸 지각시킬까봐, 지각해서 시험 보는데 심리 상태에 영향이 있을까봐 덜덜 떨고 운전을 제대로 못하시고

나는 뒤에서 엄마 괜찮아, 설마 지각하겠어? 하면서 어쩐지 담담했다.




수능이라는 이벤트는 나한테도 꽤나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소화가 안 돼서 아침에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그저 시험을 봐야되는데 혈당이 모자랄까봐 억지로 한 두 숟갈 뜬 게 전부였는데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려니 정말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같은 교실에 친한 친구도 있었고 해서 도시락을 열었더니,

보온 도시락에 검은 콩으로 그려진 하트 모양....

그런 걸 처음 보기도 했고 아침에 도시락 싸면서 그런 걸 하고 계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어쩐지 웃기면서도 울컥한 게 있어서

식욕도 없는데 그 도시락을 다 먹었다.




당시엔 생리 주기를 피임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걸 몰라서

2주나 늦어지는 데도 아무 생각도 없다가 막상 수능 당일날 시작해서...

허리를 부여잡고 시험을 봤다. (생리통도 그날 따라 심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자리가 창가 보다는 문가에 가까운 데다가 배정받은 교실이 화장실 바로 옆 교실이어서

화장실에 가기는 편했다. (가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4교시(외국어 영역) 때 시감으로 들어오신 분은 수학 선생님이었나보다.

시험이 끝났지만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방송의 지시가 필요했는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다.

그러자 심심했는지 그 시감 선생님이 자기가 풀었다면서 심심한 사람은 채점해 보라고,

수학 답을 불러주었다.

(...) 하나 빼고 다 맞았다. 그런데 그 틀린 거에는 별표가 없었다.

(※별표는 내가 답에 자신없을 때 해놓던 표시.. )

그래서 그 교실에서 전화로(...) 엄마에게 "엄마 나 수학 잘봤어!"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꽤나 큰 소리로;)

... 칼침 맞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그 때 그 년이구나!' 할 사람은... 없어야 oTL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급한 아빠때문에 인터넷을 켜놓고 채점을 하는데,

수학은 잘 봤지만 언어도 평소보다 점수가 떨어지고,

사탐은 평소 수준, 과탐은 망했(..)고 외국어도 평소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언어를 채점하는데 하나 틀릴때마다 "야 너 이런걸 틀렸냐!" 하면서 나를 때리시던 아빠.

(※국어 선생님이신지라 그딴 걸 틀린게 이해가 안되셨던지,

의도하신 건 아닌 듯하지만 본의 아니게 힘조절이 안 되신듯. 아팠다. -_ㅠ)

다 채점하고 총점을 보시더니 한숨을 푹 쉬시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수능 보느라 수고했다." 한 마디를 남기시고 담배를 피우러 가셨다.

정말 전형적인 느낌이지만, 진짜로 그러고 가셨다.





EBS 채점 방송을 보며 '이건 왜 틀렸지' 생각하며 뒹굴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다른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작은 외삼촌.

"우리 학교 전교 1등은 360점 대래요. XX이는 잘 봤어요?" 라는 전화.

엄마가 전화를 받고 큰 소리로 이렇다는데? 라고 하자

아빠의 실망을 감추지 못하셨던 표정이 좋아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 학교에 평소처럼 제일 먼저 가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놓고 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들어온 애는 평소에 일찍 오지도 않던 H.

어쩐지 기분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팔랑팔랑거리며 와서는 자기 수능 잘 봤다고 자랑.

얼마나 잘 봤는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고, (살짝 귀띔하며 자기가 전교 1등일 거 같다고)

작은 외삼촌네 학교 전교1등이 약간 불쌍하기도 하고, (사실 수능 별로 안 어려웠는데 망한거 아니야?)

내가 실제로 별로 잘 본 건 아닌가보다 싶기도 하고.

두근두근 거리지만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3번째로 들어온 학생. 자기자리에 가서 침통한 표정으로 다운.

4번째로 들어온 학생. 교실의 분위기를 보자 팔랑팔랑한 H양과, 무표정한 나와, 우울한 3번째 학생을 보고는

망설임없이 3번째 온 학생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별 말도 없이 그냥 둘은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제서야 상황 파악. (팔랑팔랑 H 때문에 헷갈렸어!)





애들이 들어와서 서로 점수를 비교하고 그제야 채점을 시작하고 온통 소란스러운 가운데

친한 친구인 S가 나를 보더니 "XX아 괜찮아, 나도 망했어" 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표정 관리가 지나쳤던 모양이다.

S는 그 뒤로도 저걸 가지고 한동안 놀렸다.






그냥, 그때의 기억들.

...이 블로그엔 이 이야기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운 사람들만 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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