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님의 분부를 받아 어제 두 동네에 전화를 돌리고, 한꺼번에 두 군데 보는 건 체력이 딸려서 한 군데는 오늘 보기로 했었다.
어제 본 집도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할 생각이 있었는데, 평수가 너무 작아지다 보니 집에 있는 가구를 서너가지 처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어제 부동산에서 선뜻 우리를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오라고 보내주기도 했고 (가계약이니 뭐니 하면서 들들 볶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더랬다.) 해서 일단 집에 와서 엄마랑 상의를 했다. 엄마는 대충 이야기를 듣고, 가구를 버릴 상황이라고 하니 고민이 돼서 네이버 부동산을 밤새 검색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 보험 가입하기로 약속도 잡아놓은 것이 있어서 일단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의 출근하듯이 삼성역에 왔고 보험 가입 등등을 하고 나니 11시. 어차피 집 밖에 나오기도 했고 해서 별로 부담없는 마음으로, '일단 보고나 오자'라고 생각해서 어제 잡아놓은 집을 보러 갔다. 솔직히 말해서 나같은 귀차니스트가 선뜻 보러 가기로 한 게 참 대단한 결정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별 생각 없이 걸었는데 역과 부동산 거리는 제법 멀었다. 지도로는 700미터 이내라면서 교통수단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직선거리가 없어서 700미터는 넘었을듯. ㅠ_ㅠ 아주머니는 그냥 집을 달랑 하나 보여줬다. 다른 집처럼 미끼매물 몇 개 보여주고 그런것도 없었다. 막바로 가서 보여줬는데, 주인이 거주하는 집이라더니 과연 상태가 특올수리 상태. 싱크대 및 신발장이 교체되어 있고, 벽지 깨끗, 장판 깨끗. 내부 샤시도 비교적 쓸만한 거. 아파트 연식에 비해서 상태가 기대 이상이었다.
크기도 우리 예산이 허용하는 적당한 크기이고. 집 상태도 너무 좋고. 걸어가면서 구경하니 동네도 좋고. 층수도 높은데다가 약간 언덕지대에 있어서, 채광도 우수하고. 게다가 고층인데 중간집. 지금까지 봤던 것들에 비해서 너무 좋은 조건이라 그냥 한다고 했다.
엄마랑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놓고, 부동산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밥을 먹었다. 독특한 느낌의 작은 가게였는데, 새우볶음밥이 맛있는 집이라더니 과연, 옆사람들도 다 새우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굴소스와 매콤한 고추같은걸 넣어서 볶은 새우볶음밥이었는데..
916 솜씨
...아...!
ㅋㅋㅋㅋㅋ 아 충격적인 맛이었다. 아침도 빵빵하게 먹고 나가서 절대 굶주린 상태여서가 아니었다... 이것으로 집에대한 호감도가 업업!
어차피 계약은 남편 명의로 할꺼라서, 남편이랑 저녁때 다시 온다고 하고 엄마랑 같이 엄마가 찜해놨다는 집을 보러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정말 99% 이미 기울어 있었다...
이상하게 내가 여기서 집 봤을땐 햇볕이 쨍쨍했는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니 날씨가 흐려졌다. 목표지역에 도착하니 심지어 비가 내리기까지...! 어쨌든 별로 마음도 안 가는데 보여주는 집마다 이상했다. ㅋ 이상한점은 세세하게 말하긴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상했던 건 집마다 냄새가 났다. 첫번째 집은 장냄새, 두번째 집은 담배 냄새... 세번째 집은 마늘냄새(...) 네번째 집은 안 났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집 보러온다고하면 얼른 팔고 싶다면 절대 음식 같은 거 먹고 있으면 안된다. 나가는게 싫으면 냄새 작렬하는 음식 먹고 있으면 되겠다. 집을 꼼꼼히 볼 수 없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집에 대한 인상이 매우 악화된다 ㅋㅋㅋ 채광도 별로 조망도 별로여서 엄마가 맘에 든다고 하자고 할까봐 덜컥 겁이 났는데 엄마는 비교적 열심히 집을 봤던 거에 비해서는 나와서 영 아니라고~ 하셨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어쩔까 싶었는데 엄마는 (아마도 엄마가 쉬기 위해서 엄마에게 편한) 친정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ㅋㅋㅋ 덕분에 아빠얼굴도 간만에 보고. 누워서 좀 쉬고 생강차 마시고 기운을 끌어올려서, 계약을 하기로 했던 집으로 돌아왔다. 두번이나 보러 갔지만 집주인은 싫은 내색은 없고, 당연히 신랑도 봐야한다고 이해해주었다. (엄마는 덤으로...) 엄마가 작다거나 할까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보자마자 OK인 눈치였고, 남편의 평가는 나중에 물어보니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고 ㅋㅋㅋ
덕분에 바로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완료하고 근처 고깃집에서 불고기로 일종의 자축(?)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여러가지 신기한 것들이 있지만 제일 신기한 부분은 그런거다. 내가 토요일에 집을 보고 일요일에 물건들을 찜하면서, 지쳐서 '아 아직 우리집은 안 나왔나봐'라고 말하고 잤는데 이집이 월요일에 나왔다.
보통 같으면 컨디션이 바닥인 지금같은 때, 별 기대감 안 생기는 집을 보러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냥 가구 버리고 계약해야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드물게도, 집을 보러 간다고 OK했다. 정말 나답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일정들이 겹치면서, 월요일에 전화통화는 하고서도 집 보러가기로는 화요일로 잡았고. (그런데도 집이 안 나가고 있었고.) 오전에 다른 약속으로 나갈 일이 있지 않았으면, 과연 제시간에 집을 보러 갔을지도 의문.
계약 후에 집주인이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들을 말 해주는데, 집 주위에 산부인과는 어디가 있다던지, 소아과는 어디어디에 있다던지, 강좌를 어디서 들을 수 있다던지 등등... 내가 아직 애가 없어서 다 소화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의 노하우를 풀어놓고 가셨다.
이제 집 보는건 내 감을 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좋아보이는데 안 끌리면 그냥 하지 말고 힘들어도 더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번 집 구하기는 현실적 여건 - 예산, 고정된 이사 날짜 - 안에서 대만족이다. 어차피 부동산이라는 게 수십 수백개의 매물을 따져 골라서 할 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부동산에서 주는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해야하는 것이고, 날짜가 엄청 촉박해서 크게 조건 따질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뿌듯하다.
이번에 집을 많이 봐서 공부도 많이 된 것 같다. ㅋㅋㅋ 어머님이 예전에 많이 보고 다니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고작 내 (경제적) 수준에 맞는 집이긴 하지만 도움이 되긴 됐다. 한달 넘게 마음 고생한 것이 그런대로 잘 마무리 돼서 기쁘다. 이제.. 푹 자고... 이삿짐 센터 예약하고 버릴 거 추려서 버리고 ... 가구 배치 고민하고.. 남은 일들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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