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일기

from 일상/일기 2007. 7. 9. 15:34

조금 이른 감이 없진 않지만 아무튼 여름 휴가라고 해야겠죠.

가족들과 여름 휴가 다녀왔습니다. 아 이제 당분간 없을 휴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동생님이 올 여름에 입대를 하시기 때문에 -_ㅜ

동생님 입대 전에 가족끼리 놀러가자는 취지에서 계획된 여행인데,

계획 시점은 7월 1일이고, 가족끼리 시간 맞춰보다보니 남는 게 7월 7-8일 oTL (동생님의 입대는 7월 말)

그래서 완전 촉박하게 휴가 계획을 잡게 되었죠.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여행에 관심이 별로 없는 관계로 엄마가 거의 모든 준비를 다 하시게 되어 버렸습니다.

장소는 (엄마맘대로) 자연 휴양림으로 결정. 개중에 아직 예약이 마쳐지지 않은 곳으로 선택하여 --> 주천(酒泉)강 자연 휴양림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전날 엄마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고 강요하셔서 들어가 보았는데 그 때까지도 빈방이 있는 정도.

보통의 펜션 정도일 거라고 심심하게 기대하고 출발했습니다.



7월 7일

12시에 점심 먹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12시에 일어난 망할 가시나(...) 덕분에 출발은 마구 지연되었습니다. ㄱ-

전날 어쩐지 몸이 안 좋더니 아침에 아예 일어나지지가 않더군요. 코막힘에 머리는 띵하고 oTL

원래 오전 중에 병원에 다녀 올 계획이었는데 병원은 커녕 여행 준비도 안 되있는 상태로;

그렇지만 어쨌든 1박2일의 여행이라고 하면 뭐, 대충 MT 갈 때 수준으로 준비하면 되는 것이죠.

그치만 차가 있으니까 괜시리 긴팔(유용했음) 긴바지(꺼내 보지도 않았음)에 화장품(볼사람도 없는데 화장하고 다녔음ㄱ-)도 챙겨주고 심심할지 모르니까 책도 챙기고 비가 올지 모르니 우산도 챙기고 등등등...(...)

애인님의 강요로 핸드폰 충전기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정작 출발은 1시 56분에 했는데, 그래도 2시는 안넘었네, 라고 엄마가 압박을 -_ㅠ




왠일로 엄마 차로 출발...

아빠가 운전하고 가는 길에 좋은 상황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사실 매우 안심했습죠. ㄱ-

엄마의 계획 메뉴에 꽃게탕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걸, 7-8월은 꽃게의 산란기라서 꽃게를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꽃게탕을 포기하긴 아쉬웠기에, 선상냉동 꽃게로라도 만족하기로 하고 꽃게와 해물을 사들고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역시나 엄마가 운전하고 가면 일단 내비게이터 따위는 필요 없음.

엄마는 미리 길도 다 마스터 하시고 출발하시는 편인데다가,

영동고속도로는 많이 타 보셨다고 하시더니 역시나 지도도 없이 쉽게 찾아갔습니다.

게다가 아빠의 네비게이션은 어쩐지 침착함. ㄱ-

지도도 없고, 제가 '찾아가는 길'을 홈페이지에서 적어놓은 종이 하나로 가는 가운데

다들 길을 지나친게 아닐까 조마조마해서 창에 달라붙어 있지만

아빠는 '아 3km 뒤에 표지판 있다고 했어. 표지판 안 나왔어' 라고 하시는 정도.






게다가 사실 길도 그리 복잡한 편은 아니었어요. 중간중간 표지판도 큼직하게 많이 있었고.

숙박시설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냥 펜션 수준.

6인용이라고 들었는데, 2층도 천장이 꽤 높고 아래층도 꽤 넓고.. 맘만 먹으면 10여명도 거뜬히 수용 가능할 정도로 넓더군요.

산 속이고 사람이 많이 안 오는 탓인지 공기도 확 깨끗했습니다.

덕분에 벌레도 아주 많았습니다..(...)

벽을 따라 방바닥에 널려있는 나방의 시체와 싱크대 근방에서 기어나오는 귀뚜라미들과...(...)

하지만 왠지 그릇도 숫자가 모자라고 조리 도구도 없고 하여 관리실에 SOS! 했더니 비어있는 옆 숙박시설에서 컵이며 뒤집개며 꺼내다 주시더군요.

(그래서 없었던거냐;)

전망이 좋다더니, 집 바로 앞에 나무가 워낙 커서 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음. ㄱ-

그치만 집 바깥에 큰 나무 식탁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바베큐 시설 +ㅁ+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죠.

엄마의 저녁 메뉴는 숯불갈비와 숯불삼겹살과 숯불새우, 꽃게탕이었는데,

갈비는 사놓고 냉동실에 두고 오는 바람에 생략되었습니다.

하지만 생략된 게 다행이었죠... 엄마는 우리 가족이 열 명쯤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ㄱ-

삼겹살도 새우도 맛있었지만 저는 솔직히 꽃게탕이 제일 맛있었어요.

알이 꽉 차있는 꽃게... 솔직히 여행지에서 희귀한 메뉴이기도 하고....=ㅂ=

그리고 시작된 술자리.. 바깥에서 썰렁해질때까지 수다를 떨다가,

집 안으로 옮겨서 2차까지!

온 가족이 술을 좋아하는 데다가 수다도 좋아하기 때문에 꽤나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동생님이 꽤나 즐거워해서 다행이었어요. 가기 전에 좋은 추억이 되었으려나.

솔직히 우리 가족이 화목하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가족은 아니에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걸 바꾸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왔는데

시간이 약인지, 술의 덕분인지, 제 노력 탓인지 아무튼 요즘에 들어서는 조금씩 성과가 보이는 거 같아서 솔직히 행복합니다. -ㅂ-

거의 모든 것을 혼자 기획하고 준비하신 (다른 사람들과 가면 이보다는 100배 정도 편하게 다녀오셨을)엄마께서는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대 만족한 것 같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왜 사람들이 여름에 휴가를 가는 지 알았달까요? -ㅂ- 휴가는 좋은 것이에요.





7월 8일

운전하실 예정이라 엄마는 전날 먼저 주무셨었는데 어쩐지 먼저 일어나 계셨습니다. ㄱ-

일찍 일어나면 일찍 잔 보람이...;;;

아침 준비 다 해놓으시고 산책까지 다녀오셔서 우리를 깨우셨다나;

아침 메뉴는 어제 남은 꽃게탕과 오징어랑 새우가 듬뿍 들어간 해물 부침개였습니다.

꽃게는 다음날 먹어도 맛있더군요 =ㅂ=

그렇지만 저는 꽃게탕 남을까봐 열심히 먹는데 다른 가족들은 전부 부침개 먹어서 어쩐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ㄱ-





식사 후엔 뒷 정리하고 퇴실...

보통 MT가면 다음 날은 다들 부시시하고 멍하고 숙취에 제대로 못 먹고 이런 거에 익숙한데,

어쩐지 강력한 간을 보유한 우리 가족은 전날 부어라 마셔라 하고도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났습니다. (소주 맥주 복분자 등 막 섞어 마셨는데;)

아침도 든든하고 푸짐하게 챙겨 먹고 샤워하고 화장까지 하고 =ㅂ=

숙소 뒤의 산책로를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산책로 시설은 형편없었어요. 일단 자연스럽게 생긴 등산로라거나, 정돈된 산책로 이런 분위기가 아니고,

대책없이 경사가 심한데 포크레인으로 나무를 쓰러뜨리고 바위를 부숴서 만든 산길을 산책로라고 이름 붙여 놓은 느낌이었죠.

워낙 그렇게 생겨먹은 데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안 다닌듯, 가는 길에 무당개구리도 보고 비얌도 보고 무당개구리랑 비얌이 맞짱 뜨는 진귀한 구경을 했습니다. (물론 비얌이 도주)

한 시간 정도 운동삼아 올라갔는데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이 안 보여서 + 그리고 재미도 없어서 적당히 내려왔습니다.

내려오길 잘한 게, 거의 다 내려오니 빗방울이 떨어지더군요.






비가 오니 계곡이고 뭐고 그냥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사실 비가 안 왔어도 계곡이 포크레인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놀기는 어려웠을 듯해요.

우려했던 대로,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 버리신 우리 엄마, 운전대를 잡고 어쩐지 눈이 반쯤 감겼다 반짝 뜨기를 반복하시고

엄마를 깨워야 할 아빠나 저도 너무 졸렸기 때문에 (동생님은 이미 꿈나라) 보이는 휴게소로 달려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시에스타를 즐겼습니다.

(사실 다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음 -_-;;;)

다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 가운데 저는 노리고 있었던 해물부침개를 +ㅅ+

아침에는 꽃게탕 먹느라 거의 못 먹었는데, 진짜 맛있더군요. =ㅂ=

잠을 쫓기 위해 일단 커피를 한잔씩들 하고, 휴게소 밖에 대나무 방갈로에서 낮잠~

저는 잠자리를 좀 가리기 때문에 낮잠을 자지 않았지만 엄마아빠는 매우 단잠을 주무신듯.

들어 앉아 있으니 에어컨 아쉽지 않게 바람도 잘 불고 매우 시원하더군요.





휴게소 들어가기 전에는 상당히 정체되고 있었는데,

휴게소에서 주유까지 하고 나오니 어쩐지 차들이 달리고 있길래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다행히 엄마도 잠이 완전히 깨신 표정이었고.

영동고속도로는 그다지 속도 못 내고 느릿느릿 왔지만, 제2중부고속도로는 안막혀서 씽씽 달리고

올림픽 대로도 뭐 그럭저럭 속도가 나 줘서, 휴게소 출발 3시간여만에 집에 돌아왔네요.

어떻게 어떻게 저녁 먹고 씻고 나니 완전 피곤해서 일기도 못쓰고 뻗어버렸....






별로 뭔가 한 것 같지 않은데 잘 쉬고 잘 먹고 정말 잘 놀다 왔어요.

어느 정도냐 하면 여행을 싫어하시는 아빠가 휴게소에서 여행지 지도 팜플릿을 챙겨오시는 정도? ㅋㅋㅋ

이 일기의 앞부분에서 느껴지는 저의 태도와 뒷부분에서 느껴지는 저의 태도가 막 달라지는 정도? ㅋㅋㅋ

뭐 아직 인생은 기니까요.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이런 날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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