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했던 이사 - 물론 결혼 후에 - 는 아무것도 모르니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해서 여러가지 불편이 많았다.
요번 이사는 그래도 한 번 이사해 봤다고 노하우가 생겨서 일찍부터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이사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에 잘한 일.
1.
사실 중간에 설치까지 하려니 정신이 굉장히 없긴 했지만, 인터넷, 가스, 에어컨, TV, 비데 설치 신청을 대부분 1~2주 전에 해 두었더니 이사 당일날 깔끔하게 설치가 완료됐다. 지난번 이사에서는 특히 우리에게 중요한...ㅋ 인터넷이 연결이 다음날 되어서 상당한 불편을 겪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어차피 문 열어놓고 사람 많이 오갈때 와서 해 주는 것이다 보니까 (언제올지 기다리고 있지 않은 점이) 심적으로도 편안한 감이 있었다.
2.
한번 해 봤던 곳 - KGB 분당남부점 - 에 이사 의뢰. 여러 곳에 맡겨본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을 남에게 맡겨본 경험 - 예를 들면 이사청소라던지? - 에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잘 해주시는 분들인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할 때 싫은 소리는 커녕 당연히 다 해드려야죠 라고 하는 분들.
요번 이사 중에 우리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약속시간에 엄청나게 늦어서 - 사실 거지같은 모 부동산에서 시간약속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우리입장에선 1시간 이상 지각이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선 늦었다고 하기도 뭐하다 - 여러가지로 문제가 꼬였고 덕분에 가구 배치를 해야 하는 초반에 집에 있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가구 배치가 좀 잘못되어 책장 한 장의 책을 다시 꽂을 상황이 되었는데, 책이 다 꽂힌지라 (개중에 우리집에서 책 제일 많이 들어가는 장....) 내가 차마 미안해서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지 못하자, 지금 우리 가면 어떻게 바꾸실려고 하냐고, 그게 더 큰일이라면서 얼른 바꾸라고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해주셨다. 그래서 책이 다 꽂힌 책장 한 장이 (책은 도로 다 뽑히고..) 내가 의도했던 자리로 나왔다. 심지어 나머지 책장도 책 반쯤 꽂다가 말고 위치를 바꾸는게 좋겠다며 내가 미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적극 설득해주어서 방 배치가 이사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져버렸다......? 뒤쪽 작업은 심지어 안 해도 되는 작업 아닌가..?!
우리 집 안방 가구는 내가 봐도 조립 난이도가 지옥 난이도인데 - 허리에 서랍이 있는 구조라 장롱에 문짝 6개 추가, 양쪽으로 레일로 연결된 책장형 날개가 달린 침대 보드... 게다가 보드가가 무거워서 매트리스 받치는 판이 2개로 분리되는 구조인데 그 와중에 밑이 그냥 다리가 아니고 서랍장.. - 일흔이 넘으신 고수분이 오셔서 휘리릭 하고 맞추고 가셨다. 첨에는 금방 해주신다고 걱정말라더니 조립을 하시다 말고 갑자기 도로 뜯는다...(...) 보니까 침대 매트리스 받치는 판이 두 개가 분리되어 있는데 그 두 개간의 연결이 없다보니 받치는 서랍이 없는 쪽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요번에 서랍장 위치가 바뀌어서 알았는데, 받침이 없던 쪽이 눌렸다... 그걸 굳이 나무 젓가락 깎아서 나무핀을 만드셔서는 고정시켜주고 가셨다. 지난번 이사 때도 같은 곳에서 했지만 안방 장롱+침대 조립이 한 세월이 걸리는 바람에 다른데 다 끝나고 안방 끝나길 기다렸는 데 오늘은 그렇게 하다말고 다시 더 했는데도 남들하고 비슷하게 끝나서 유유히 가셨다. 허허허.
주방 아주머니는 사장님의 사모님인데 그 때 오셨을 때도 너무 깔끔하게 챙겨 와주셔서 거의 걱정을 안했다. 사실... 예전 집에 남아있어야 할 것들이 막 딸려온 전적(?)이 있어서 물건을 빠뜨리고 덜 챙길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더 챙길까만 유심히 보고 있었다ㅋㅋ
나머지 분들도 다들 좋은 분들이다. 다들 성격도 좋으셔서 시종 웃으면서 수다도 떨어주시고 가끔 농담도 해주시고 해서 짐 뺄 때 두 시간 짐 넣을 때 세 시간을 서 있었는데도 힘든 줄을 몰랐다. 솔직히 이사 맡길려고 할 때만 해도 걱정을 했는데 - 날짜가 급해서 예약 다 됐다고 하면 모르는 곳에서 할까봐 - 잔금까지 끝나고 나서는 아무 걱정없이 그냥 믿고 맡겼다. 가실 때 다음 번에도 (인제는 이 먼곳을...ㅋ) 또 와서 해주세요, 그랬더니 단골이니 당연히 해주신다고. 흐흐흐.
3.
어머님께 SOS. 덕분에 휴가이셨던 아버님도 오셔서, 차량이 두 대고 사람도 넷이나 되어 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좀 생겼다. 점심 시간도 사실 일이 어찌될 지 몰라서 안정했는데... 우리 남편은 밥을 굶기면 성능이 매우 저하되는 타입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아버님이 오신 덕에 아버님 차로 후딱 이동해서 먹고 오니 몸도 마음도 편했고, 내가 잔금 정산이니 전입신고니 하러 집을 비웠을 때도 어머님이 계시다보니 정리가 좀 더 되는 면이 있었고. 아침에 오실 때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간식거리를 챙겨다 주셔서 너무 좋았다.
사실 항상 일하는 부모님이기 때문에 마음 속의 이런 큰 순간들에 엄마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하고는 싶지만 말하지 않는 - 말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 부분들이 많이 있다. 어머님 아버님도 물론 일을 하시긴 하지만 어머님은 뭔가 좀 다르다. 어렵고 힘들어서 (별로 뜻없이 그냥 상황을) 이야기하면, 항상 선뜻 먼저 '야, 내가 도와줄께!'라고 하시거나, '내가 도와주러 갈까?'하고 물어봐 주시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도움을 받는다. 집 보러 갈 때나 이번 이사날에도 선뜻 먼저 도와줄까 물어보셔서 너무 감사히 도움을 받았다. 남들은 시댁이 고민이라는데 나는 내 부모님과 또 다른 부모님이 한 세트 늘어난 기분이다. 사실 좋다 ㅋ.ㅋ 이렇게 써놓고보니.. 되게 내가 어머님께 심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많구나.
4.
미리 짐 정리를 많이 해놓은 부분...ㅋㅋ 내가 절대 깔끔한 성격은 아닌데도 깔끔하다며 심지어는 칭찬도 들었다... 사실 절대 깔끔할 리는 없고 이번에 다른 것보다는 많이 버렸다. 고물상에 갖다준게 70kg은 되는 것 같고, 아름다운 가게에도 맡겼고 버리기 아깝다 싶어도 쓰겠냐 싶은 건 죄다 버렸다. ㅋㅋㅋ 그리고 쓰레기 봉투로도 100L 정도는 버렸다. 덕분에 수납 공간이 확 줄어든 것에 비해서는 물건들이 비교적 제자리를 잘 찾아갔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곳은 뭔가 짐더미가 남긴 했지만. ㅠㅠ
이번에 못한 일.
1.
체력 부족을 핑계로 짐 정리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2년간 열어보지 않은 상자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더 이상의 용도가 없어서 버려야할 것 같은 물건들 중에서 버리지 못하고 싸안고 온 것들도 있으니까.
2.
청소를 제대로 못했다. 물건은 버린다고 신나게 버렸지만 먼지가 그대로 앉은채 이사온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ㅠㅠ
3.
급하게 부른 이사 청소. 뭔 이사청소를 한나절이나 하나 그랬는데 겨우 2명이다보니 온종일 닦아도 잘 안되었던가. 여러 가지로 기분도 상했고 곰팡이 가지고 추가요금도 엄청 부르고 그래서 상당히 불쾌했다. 그리고 일을 좀 꼼꼼하게 안하고 대강대강하는 느낌이고, 세제도 굉장히 독한 걸 사용한 것 같았다.
4.
이삿날 대처도 잘못했다. 잔금 치를 때 당연히 계좌이체 할 것만 생각하고 수표가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 등을 생각을 안해서 은행에서 출금을 못했고, 전입신고 하는데 세대주 도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도 두 번 걸음하는 귀찮음이 있었다.
몇가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이사였다. 이사를 하면서 정리될 걸 기대하기도 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렇게 되긴 했다. 방 세개에서 두개로 왔는데, 원래 방 하나를 거의 창고처럼 사용해왔다보니 오히려 넓은 크기의 방 하나가 있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이 집은 우리가 잘 안쓰던 공간 - 거실, 작은 방 하나 - 만 줄어든 느낌이라서. 진즉 요만한 크기의 집에 살았더라면 2년간 참 좋았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 집은 새 식구 짐을 사들이기엔 다소 좁긴 좁다. ㅠㅠ 뭐 그래도, 2년은 버티지 않을까. 미처 못 버린 것들 다시 슬슬 정리해서 버려야겠다고 생각중. 지금 제일 버리고 싶은 건 혼수로 해와서 2년 쓰고 그 뒤로 계속 가스레인지가 빌트인 된 집으로 이사를 가서 창고에서 썩어가는 가스레인지. ㅠㅠ 공간도 많이먹고 췟.
아무튼 올해의 가장 큰 미션 중 하나가 클리어되어서 이제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집이 좀 춥다... 흑흑.